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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Oct 02. 2023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태극 마크

#버지니아군대 #태극마크 #버지니아 #연인 #인스타그램 #미대륙간철도

버지니아 군인의 태극마크


2022년 11월 12일 어느날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노란색 바탕에 흰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초록색 잔디밭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군복을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여인은 두 팔을 벌려 남자의 목을 껴안았다. 남자는 여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왼쪽 팔에는 '태극 마크'가 패치돼 있었다. 다음 영상을 보기 위해 스크린을 터치했다.


팬더믹이 지속되면서 ‘릴스(쇼컷 영상)’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전세계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식물을 키우고, 춤을 추며 갖가지 기행을 하는 모습을 60초짜리 영상을 눈으로 과식했다. 세상 사람들은 저렇게 웃기고 재미있게 사랑스럽고 귀엽게 사는구나. 아빠와 춤을 추는 꼬마 아가씨, 남편 앞에서 냄비를 뒤집어 쓰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아줌마, 그림 같은 이탈리아 해변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 평화롭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검은색과 회색의 두 회오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태극 마크이다. 영상을 되돌려 봤다. 우리나라에서 복무한 주한 미군이었나?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순간인가? 그녀가 입은 꽃무늬 원피스는 ‘샵사이더’라는 쇼핑몰에서 28달러에 팔리는 ‘잔꽃무늬 타이 숄더 미니 드레스‘였다. 여인이 뒷 모습을 촬영한 걸 보면 의류 회사에서 제작한 홍보물 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며칠전부터 옷을 고르고 머리를 하며 재회 장면을 찍은 것일 수도 있다.

    

버니지아 주 방위군 제29 보병사단의 태극마크


영상 배경 건물에 ’버지니아 아미(Virginia Army)’가 보였다. 태극 마크를 단 군인이 소속된 부대는  ‘버지니아 아미 내셔날 가드(Virginia army national guard)'로 버지니아주 방위군이었다. 1607년도 버지니아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민병대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태극 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제29 보병사단'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태극마크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일병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독일어 통역을 담당하는 '업햄'이라는 겁 많은 군인이 참전한다. 그가 주인공 '톰 행크스'와 대화하는 장면에 ‘태극’ 마크를 단 군복과 군모를 쓴 장면이 나온다. 고막이 터지는 포탄이 날아들고 거센 파도를 넘어 해안에 다다르는 부대원들을 보면 청색과 흰색의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실재로 1944년 버지니아주에 ‘존 맥코넬’라는 18살의 가난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애국심 때문이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여한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번 돈으로 고향에 돌아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산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그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27살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태극은 언제부터 제29사단 보병대의 상징이 됐을까.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모

미국 남북전쟁이 만든 '태극마크'


미국에서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동안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백인 남성 30%가 사망하고 70만명이 죽었다. 상이 군인만 300만명에 이른다. Lee씨 장군(제너럴 리)이 이끈 남부군의 패배로 북부군이 승리한다. 이때 우리나라의 DMZ처럼 남부군과 북부군의 완충 지대인 '메이슨-딕슨 라인'이 생긴다.


1910년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제임스 울리오(1882년생)’ 소장은 제29사단 보병대에 배속되는데 남부군과 북부군 양쪽 경계선에 소속된 부대를 하나로 모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국가의 화해와 통일을 강조하는 패치를 디자인해 파란색과 회색으로 한국의 '생명의 상징'을 차용했다. 이 기호는 부대의 트럭, 자동차, 구급차, 사단의 재산에 표시됐다. 7년이 지난 1917년에 공식적으로 육군의 사단 패치가 됐다. 


이런 사실은 최근에 알려졌다. 2021년 10월 버지니아 주 방위군 사령부의 역사학자 '알 반스(Al Barnes)'가 버지니아주 방위군의 역사 수집품에서 발견한 문서 덕분이라고 밝혔다. 


https://va.ng.mil/News/Article/2812204/historic-documents-help-reveal-back-story-of-29th-id-patch-creator/


지금도 유럽의 한 경매 사이트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썼던 ‘태극 철모’가 3,900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부대의 철모와 군복, 휘장, 군부대의 모든 재산에 시계 방향으로 도는 ‘태극 무늬'가 도배됐다.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가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태극은 1894년 '청일전쟁' 때도 쓰였고 1914년, 1939년 1,2차 세계대전에도 쓰였다. 


미국 대륙간 횡단 철도의 로고 '태극'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날 무렵에 미국에 동부와 서부를 가로지는 대륙간 횡단 철도가 부설됐다. 1880년도에 14만8,800km의 철길이 완성됐다. 러시아 횡단 열차는 9,288km인데 반해 세계 최대 길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북대평양 철도회사(Northern Pacific)는 상징물이 필요했다. 관계자 '맥헨리'는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 참석한 '조선의 상징물'인 태극을 보고 회사의 로고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철도 완공 13년이 지난뒤에야 태극 마크가 회사 상징이 됐다. 태극은 워싱턴주, 몬타나주, 시애틀, 옐로우스톤국립공원, 북태평양철도회사 로고, 노드 다코다의 비스마르크시 철도 건물과 승무원들 뱃지, 문구류, 식기류, 유니온역 창문에 새겨졌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철도 용품 골동품이나 경매 사이트에서 태극 마크가 인쇄된 기차표나 출입증 등을 찾을 수 있다. 


미대륙 횡단 열차 노던퍼시픽 북태평양 철도의 태극마크


청군백군 운동회


버지니아 방위군의 태극 색상을 보면서 어렸을 때 가을 운동회가 떠올랐다. 만국기가 운동장에 걸리고 행진곡이 울려 퍼지면서 흰색 반팔, 반바지에 청색 모자와 흰색 모자의 두 팀으로 나눠 줄다리기, 계주 달리기, 장애물 뛰어넘기, 박 터뜨리기를 하면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점수를 냈다. 동네 할아버지들, 아저씨들도 합세해 풍물을 치고 막걸리를 걸치며 춤을 췄다. 가을 운동회는 추수를 끝낸 어른들의 잔치가 됐다. 


내가 다닌 학교는 전교생이 6반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어느해는 청군도 됐다가 백군도 됐다. 운동회를 하면서 왜 '청군, 백군'으로 나뉠까 늘 궁금했다. 태극기처럼 '청군 홍군'으로 나눠야 하는 것 아닌가? 처음에 누가 '청군, 백군'으로 정했을까. 의문은 꼬리를 이었다. 그당시 전국에 모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었다. 지금도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는 청군, 백군으로 나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만물이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개의 요소로 이뤄져 있다는 음양오행설을 이해하면서 '청군과 백군'의 색상을 미루어 짐작했다. 동쪽은 봄이자 나무를 상징하는 ‘청색’이다. 서쪽은 가을이자 금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남쪽은 붉은 색이고 북쪽은 검은색인데 우리는 청색이 되고 북쪽은 빨강이 됐을까?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 참석한 조선의 '태극' 색상은 노던 퍼시픽 철도회사와 같은 색상이다. 조선은 음양오행의 색상에서 동쪽과 남쪽의 색상을 사용용했을까? 그런데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는 동쪽과 서쪽의 개념이 더 많다. 운동회 때 청군, 백군으로 나눈것처럼 '동과 서'의 방위 개념이 호칭으로 쓰이고 있다. 


왜 서방님이고 동상례일까?


옛날에 결혼식이 끝나면 친구들이 신랑 발바닥을 북어대가리로 때리며 괴롭혔던 '동상례'가 있었다. 동상례의 동은 '동쪽'을 말한다. 아내가 남편을 부를때는 '서방님'이라고 부른다. '서쪽에서 온 님'이라는 뜻이다. 이런 기록은 '문자로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그 어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 동쪽의 양족과 서쪽의 웅족 국가가 세력을 다퉜다. 전쟁을 치루던 두 나라는 웅족의 승리로 끝난다. 그들은 평화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남자가 여자쪽으로 장가'를 가는 '머슴살이' 제도를 고안해 냈다. 반대로 여자쪽 남자 형제는 매형 집안으로 장가를 가서 '머슴살이'를 했다. 이런 누비혼인제도로 평화를 되찾게 된다. 지금도 '장가 간다'는 말이 남은 것은 이런 관습이 조선중기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딸을 남자쪽으로 시집 보내는 것으로 제도를 바꿔 반발을 샀고 '시집간다'라는 말이 생겼다. 외국의 사극과 우리나라 사극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왕비가 신하들과 독대해 국정을 논의하고 왕의 뒤에서 정사를 조정해 스케일에서 차이가 난다. 외국은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지만 우리나라는 여성의 성씨가 그대로 유지된다. 여성의 권력이 크고 외척 세력이 컸던 이유는 모계사회 중심 문화가 평화로운 시대를 가져왔고 오래동안 이어졌기 때문 아닐까. 


좌우 행정구역의 변화


조선시대 행정구역은 지금처럼 남북이 아닌 경상좌도와 우도, 전라좌도와 우도처럼 좌우로 나뉘었다. 그만큼 좌와 우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이 있거나 좌우가 넓었던 것 아닐까. 행정구역의 좌우 개념이 사라졌지만 우리가 쓰는 '서방님' 같은 호칭과 운동회 때 구분하던 색상으로 남은 것 같다. 


미국의 국립박물관에는 왼쪽 상단에 청색 바탕에 흰색 별이 새겨진 성조기에 '1871년 Corea'가 새겨진게 전시돼 있다. 왜 America가 아니라 미국 국기에 자신의 국명이 아닌 'Corea'일까. 미국과 우리나라의 공통분모를 찾다보면 영어에서도 그 유래가 라틴어만큼 우리말이 아닐까 싶은 것을 발견했다. 외우던 영어에서 비슷한 발음을 찾는 놀이가 된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화성군과 워싱턴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다르고 낯선 언어'가 아닌 '비슷한 언어'로 모드를 바꾸니 소경이 눈 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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