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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21. 2024

입력값은 내가 정해

#북한산 #날씨 #반항 #통제

늦은밤 그에게 카톡이 왔다.


"낼 비올 확률 90%"


비오는데 북한산에 갈거냐는 물음이었다.


새벽에 갈거야, 새벽에는 안와.


그가 답했다.


"윽  새벽간다고"


7시-12시는 안와. 가자


그가 또 물었다.


"새벽  어찌 일어나?"


데리러 갈게^^


"몇시에 만나야  하는데?"


7시


"쩝  고민좀 하고"


^^ 그냥 쉬어


그가 물었다.


"넌 갈거야?"



"혼자?"


새벽에 가면 짜릿해~! 그럼


"대단타"


어르신 입장에서는 그렇겠다... ^^ 잘자~~


너무 짖꿎게 말했나 후회했다. 모르겠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새벽에 알람없이 눈이 떠졌다. 북한산성 입구에 도착하니 7시다. 토요일이다. 사람들이 북적일 공간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종말을 맞은 것 같다. 어떻게 아무도 없을 수 있지? 다행히 나같은 변이를 발견했다. 마른 체격의 젊은 남성이 배회하더니 산을 향해 올라갔다.



예의상 허리 돌리기로 준비 운동을 끝내다. 고민없이 의상봉으로 향했다. 혼자다 혼자!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는다. 내 키의 대여섯배가 되는 나무 꼭대기가 휘청거린다. 목을 제껴 올려다 보니 내 몸이 개미만큼 작아진다. 장대비가 올 것 같다. 왕성한 녹음과 빠르게 밀착 됐다. 나는 마지막 남은 인류라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산 속 암자에 사는 스님들이 떠올랐다. 그분들 외롭기 보다는 숲속의 주역으로 살고 계시구나. 나만 환영 받고 나만 누리는 것 같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면서 부왕사지에서 어슬렁 거리던 어미개가 떠올랐다. 그 개를 만나려면 의상에서 국령사길로 내려오면 안된다. 용혈, 용출, 증취봉까지 가야한다. 그 길로 가야지. 가서 도시락을 나눠 먹어야지. 길냥이 밥주는 아줌마 기분이 이런가보다.


어깨를 누르는 배낭에는 황남빵 3개, 복숭아 1개, 유나네 삶은 계란 2개, 4월에 만들어 얼려 놓은 찹쌀쑥떡 1개, 찹쌀밥 위에 열무김치와 오이지를 올리고 들기름을 담뿍 뿌린 밥이 있다. 혼자 걸으니 마음껏 쉬고 마음대로 속도 조절을 하며 걸었다. 초반에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호흡했다. 매번 힘차게 걷다가 후반에 뒤쳐진 경험이 있다. 애써 즐거운 마음을 가라앉혔다.



여러번 간 길이라 의상, 용혈, 용출까지 수월하게 갔다. 마지막 증취봉에서 밥을 먹고 내려가면 부왕사지터이다. 사람들이 없으니 사방에 밥 먹을 식탁이 널렸다. 나무에 기대 가방을 내려놓고 도시락을 꺼내 고개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눈꼽이 끼고 슬픈 표정의 밤색털을 한 어미개가 나타났다. 순간 얼음이 됐다. 황남빵 하나를 줬다. 씹는둥 마는둥 배속으로 밀어 넣었다. 두개를 주고 떡을 주었다. 씹지도 않고 삼켰다. 계란을 나무 뿌리에 대고 깼다. 조심스레 까서 줬다. 게눈 감추듯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들기름 듬뿍 김치와 밥을 줘야 하는데


김치를 먹을 수 있나?



열무김치를 일부 덜어내고 줬더니 오이지며 김치까지 깨끗하게 먹었다. 도시락 그릇이 움직이니 발을 집어 넣어 고정시키고 먹었다. 아쭈 머리를 쓰네. 나는 열무김치를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었다. 어미개가 슬픈 표정으로 움찍하며 눈이 마주쳤다.


열무김치도 먹으려고?


그릇에 줬더니 아삭아삭 잘도 먹었다. 모두 줬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있으면 먹을 것을 더 주고 싶었다. 며칠을 굶었나보다. 마침 씩씩해 보이는 중년 남성 한 분이 지나가길래


'선생님' 하고 불렀다.


혹시 먹을 것 있으세요?


"네? 어....떤 먹을거요?"


저기... 개가 먹을게 필요해서요.


그는 에이스 과자 하나를 꺼내 바위에 늘어 놓았다. 어미개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은뒤 혀가 닳도록 바위를 핥았다.


착한 일을 한 것 같았다. 보시? 공덕을 쌓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려가는 길에 에메랄드 빛 계곡물이 보였다. 주저없이 내려가 몸을 담궜다. 소심한 수영을 하고 바위에 올라와 앉아 손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았다. 여름 산행의 묘미다. 등산복이 물을 머금지 않아 불편하지 않았다. 추위가 느껴졌다. 나처럼 온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남성이 고개를 숙이고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깔깔거리며 웃는 여인네 소리가 들렸다. 나랑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집에 와서 씻고 잠이 들었다.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그에게 카톡이 왔다.


"살아서 왔어? 비 안오네 몇시간 걸렸어 어느 코스로 갔어"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옛날에는 지리산 가면 밥해먹고 텐트에서 자고 .. 이런 낭만이 없어 예전에는 다 했는데"


지금도 하면 되지! 벌금 물고 입력값을 내가 정하는거지... 하고 답했다.


오늘 일기예보 때문에 산행을 취소한 사람들은 뭘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음의 일기예보를 내가 결정했으면 좋겠다. 호들갑 떨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흐리면 흐린대로 비오면 비오는대로 그것과 하나되는 상상에 무게를 뒀으면 좋겠다.



어느 세차게 비가 오는날 어린 아들을 앞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고 가는데 일부러 비를 맞으러 나온것 같은 외국인 모자를 봤다. 엄마는 건강 염려증으로 나에게 약을 주입했다. 나는 아들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예방접종을 안맞췄고 내복을 안 입혔다. 일부러 춥고 덥게 키우려 했다. 우산을 쓰지 않고 비에 젖어 감기가 걸리길 바랬다. 눈싸움을 하며 추위에 오돌오돌 떨게 하고 싶었다. 더러운 물 웅덩이에 뒹굴길 바랬다.


본의 아니게 규정을 어겨 벌금을 내고 과태료를 납부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그것을 지키느라 애쓰며 살고 싶지 않다. 아무리 안그렇게 하려고 해도 걸릴 수 있는 구조에 지친것 같다. 이제는 하라는 대로 하고 싶지 않다. 알려주는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다. 과도한 불안과 위기, 걱정스런 말들을 쏟아내는 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낀것 같다. 감정을 통제 당하고 싶지 않다. 비 맞으며 산행하면 좀 어때. 계곡 물에 들어가면 좀 어때. 나는 자연을 다 쓰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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