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캠핑장 #친구 #우정 #성공 #떡국
2024년 갑진년 마지막 날 밤이었다. 남편의 절친 부인한테 전화가 왔다.
눈꺼풀이 내려 앉아 할 일 없이 있었던 나는 어디서 괴력이 났는지 힘이 솟았다. 코를 골며 정신 없이 자고 있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남편의 친구 부인은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서로 말을 놓고 지낸지 오래다. 가끔 카톡을 주고 받을땐 반발 비슷하게 존대어를 섞어 썼다. 남편끼리 절친이다 보니 결혼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게 됐다. 서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행도 다니고 밥도 자주 먹었다. 우리는 늘 그녀의 결정대로, 정한대로 움직였다. 칼국수 먹을까 고기 먹을까 했을 때 그녀의 얼굴을 본다. 그녀가 가자는대로 갔다. 부엉이처럼 큰 눈에 오똑선 콧날, 복있어 보이는 선명한 입술은 대구 사람 특유의 강한 사투리를 구사했다.
해수로 이십사년을 만나왔다. 큰 문제 없이 투닥거리지도 않고 잘 만나고 잘 늙어가고 있다. 연말인데 아들도 없고 무료하던 차에 개흥분 하듯 두꺼운 롱 점퍼와 장갑등을 챙겨 어둠을 뚫고 난지 캠핑장으로 향했다. 이상스레 겨울이 오면 아궁이에 불을 때고 싶은 욕구가 올라와 불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캠핑장을 예약해 갈 추진력과 돌파력은 없다. 그러나 행동력과 결정 장애가 없는 그녀 덕분에 중국 상해, 소주, 항조우등을 여행하고 수영장, 캠핑장, 바닷가 등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곤 했다.
그녀의 한밤중 호출에 신나서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다. 마침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해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운을 띄운 뒤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나러 어디를 가는지 상세히 보고를 했다. 그러자 동네 친구왈 "와~ 지우아빠 성공한 인생이네, 그렇게 준비해 놓고 오라는 친구가 있으니 성공한 삶이야" 그러는 것이다.
집에서 출발한지 20여분만에 난지 캠핑장에 도착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남편의 절친 부인이 앉아 있었다. "자기야~ 불러줘서 고마워어~~~" 하며 아양을 떨었다. 하늘에는 자대고 그린 것처럼 수많은 별빛이 반짝거렸다. 건조한 한강의 밤공기가 쨍하게 볼에 닿았다. 붉게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얼마만에 앉았는지 반가웠다. 어릴적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할머니가 고구마를 꺼내 주시며 먹으라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남편 친구와 부인에게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들을 얘기를 전했다. 신부전증 환자로 사십대 일을 그만두고 투석만 하며 집에만 있다. 남편이 '성공한 삶'이라니. 사회적 관계도 없고 내세울 재산, 능력도 없다. 친구가 부르고 달려가는게 성공이구나. 부부 사이처럼 친구 사이도 검은 머리 흰머리가 되가고 있다. 건장하던 몸은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고 텐트를 펴고 접는 방법도 뜸을 들일정도 총기가 떨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커서 바깥으로 나간다. 그녀의 얼굴에 핀 기미와 검버섯, 주름진 얼굴은 내 얼굴을 보는 듯 했다. 젊었을 때 너무 싱싱해서 이마에 빛이 났었다. 아이를 키우며 신경질도 내고 짜증도 폭발하던 시기도 있었다. 부부싸움을 해서 울고불고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는지도 모르고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늘 앞장서 먹을 것을 준비하고 갈 곳을 정하고 따라다니기만 했다. 능동태도 살아가는 그녀와 수동태로 살아가는 나는 결혼을 통해 또다른 낯선 사람들과 친인척처럼 사는게 신기하다.
성공은 모르는 사람들 위에 서있는 게 아니라 친구와 마주보고 밥먹는 일임을 정의내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