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전증 #빈혈 #수혈 #추위
어제 일산 병원에서 수혈 두 팩을 맞고 온 남편이 말했다. 늘상 춥다고 해서 고혈압 약을 먹어서라고 생각했다. 난방을 높여도 추워 했는데 몸에서 온기가 돌았나 보다. 빈혈 수치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6'이라고 했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시험 점수로 치면 낙제 점수. 팔에 꽂은 주사기로 시뻘건 핏방울이 느린 화면처럼 떨어져 들어갔다. 어느집 귀한 자손의 피일까. 혹시 금메달리스트? 천재 과학자?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혼자말로 "착한일 많이 해야겠다"고 했더니 아들이 해서 괜찮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봉사 시간을 '헌혈'로 대신했다. 운동선수니 얼마나 싱싱하겠냐며 철 없는 소리로 권장(?)을 했다. 남편이 받은 수혈이 아들 것일수도 있으려나. 혈액형이 달라 그럴리 없지만 엉뚱한 상상을 했다.
타인을 관통해서 온 혜택을 경험하니 봄바람처럼 사람을 대하라는 말이 와 닿았다. 남을 돕는게 나에게 더 큰 행운으로 온다면 서로 착한일을 하려고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직접적인 선행보다 시간이 흐르고 남을 거쳐 온 은혜가 잘 익은 김치처럼 숙성된 듯 하다.
3년동안 이어진 코로나 팬더믹으로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웃음이 긴장과 경계로 바뀌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에 대해 경직된다. 마음을 조이고 이완시키지 못한 빈혈에 걸린 것 같다.
새해에는 봄 바람처럼 사람을 대하라는 정신, 하나님을 사랑하듯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지팡이 삼아 완화시켜야지 마음을 먹었다. 어머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며 스스로 뿌듯해 하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밤 12시경이었다.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초인종 소리가 싫어 꺼놨는데 이사와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을 부여잡고 '누구세요?' 하니 삼십대 중반쯤 되는 남자가 '밑에 층에 사는 사람인데 너무 시끄러운데 뭐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네? 저희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요?'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고 문을 열지 않은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잠시 뒤 투덜대는 목소리가 사라지며 감사와 은혜로 충만했던 육신은 온데간데 없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네 이웃을 내 몸처럼... 주문을 외우듯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럴려고 예방주사처럼 봄바람처럼 대하라는 둥,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둥 신호가 왔을까. 예전 같으면 조목조목 따졌을 일인데 얼마가지 않아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직은 이웃을 돌보기 전에 '나부터 돌봐야지' 하고 주제 파악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