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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에 큰 사람이 계셨다

#변기 #시골집 #화장실 #정화조

by 가쇼

옛날에 세들어 살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갑자기 안방 변기에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변기를 뚫어주는 분을 불렀다. 위 내시경 하듯 긴 쇠줄을 변기에 넣고 돌리더니 막히지 않았다고 했다. '정화조'를 푸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출장비 4만원을 지불했다.


'정화조'를 푸는 분을 불렀다. 집과 도로 사이 바닥에 있는 푸른색 뚜껑을 열어 정화조를 펐다. 그래도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상하다는 듯 그 똥푸는 푸르딩딩한 파이프를............ 거실로 끌고 들어와 안방 화장실로 갖고 가셨다.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아마존 도아뱀처럼 주름진 청파이프가 변기에 입수해 물을 뽑았다.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가 나올뻔 했다. 물은 빠지지 않았다. 출장비 4만원을 드렸다.


그런데 아들이 용무가 급했는지 내 경고를 상무시하고 안방 화장실에 똥을 눴다. 습관적으로 레버를 눌렀다. 변기가 차오르며 대소변이 섞여 국수 삶은 물이 넘치듯 타일 바닥에 휴지며 부유물들이 월담을 했다.


우리에게 세를 준 집 주인 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집 짓는 일을 하신 분인데 말기 암으로 투병중이셨다. 항암을 하느라 1주일 뒤에 오실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안방 화장실은 똥물과 잔여물이 넘친 상태로 방치 됐다. 아이를 키울 때도 똥 기저귀 가는 일이 힘들어 숨을 참고 간신히 닦았다. 얼굴이 벌개지곤 했다. 비위가 약해 치울 엄두가 안났다.


1주일 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주인 아저씨는 정화조 푸는 사람을 데리고 와 살피시더니 하수구로 흘러가는 쪽을 뚫으셨다. 변기와 정화조, 하수구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몰랐는데 남편이 정화조의 원리를 설명해 대충 이해를 했다. 변기 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변기에서 정화조로 들어가는 부분을 뚫으셨다. 익숙하게 변기 물이 내려 가는 소리에 환호성이 나왔다.


문제의 원인을 바로 찾았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문제부터 찾는 과정이 없다면 어찌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겠냐.


너무 기쁜 나머지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변기에 맨 손을 넣고 깨끗이 닦았다. 비위가 약하다는 말은 생각이 만든 허상이었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을 정도로 청소를 하고 지인들에게 똥누러 오라고까지 했다.


주인 아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항암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유골이 들어갈 납골당을 예약하고 재혼한 아내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며 정리를 하셨다. 죽는 순간까지 몸의 통증과 죽음에 대한 불안 대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그 작은 체구에 큰 사람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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