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서울경운학교 #지하철 #출근길 #지각
서울에 나갈때는 옷 차림에 신경을 쓰게 된다. 내 머리카락이며 옷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는 타인과의 초근접 거리 덕분이다. 나는 사람들이 한산할 것 같은 맨 앞 칸을 공략한다. 노트북이 든처럼 무겁고 큰 배낭에는 도시락과 화장품밖에 없다. 좀 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 가방을 고수하는데 선반에 올려놓고 책을 본다. 출퇴근 시간 소중한 내 독서량의 전부다.
앞자리에 앉은 건장한 남성이 팔짱을 끼고 검은색 마스크를 눈에 가렸다. 잠이 든건지, 자려고 애를 쓰는지 남들 시선을 게의치 않는 듯 했다.
갑자기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느 젊은 여성이 졸도를 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별 생각없이 책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소리가 더 크게 났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휘청거리는 가녀린 몸은 다음 정거장에 내릴 기미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선반에 올려둔 배낭을 꺼내서 그녀의 팔을 부축해 뒤따라 내렸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앴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생머리를 채 말리지 못하고 지하철을 탔던 것 같다. 이마를 짚었는데 열은 없었다. 축축하게 식은땀이 느껴졌다. 의자에 앉히며 '괜찮냐고' 물었다. 전에도 그런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했다. '앰블런스를 불러줄까요' 했더니 한사코 마다했다.
그래도 걱정돼 119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다. 지하철 역내의 직원을 올려 보내겠다며 끊었다. 나도 모르게 '아니 젊은 사람이 이렇게 몸 관리를 안하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줬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쓰러졌으니 망정이지 혼자 있다가 그러거나 자동차가 지나치는 길에서 그러면 어쩌냐 책망하듯 내뱉었다. '출근하셔야 하는데 늦어서 어떡해요' 꺼지는 불씨처럼 나를 걱정했다. 등 뒤에서는 지하철이 두 대가 지나갔다. 지각이다.
그녀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며칠전 찾아가 진맥을 짚었던 '살림교회' 목사님이 떠올랐다. 그분은 맥을 짚어 사람들의 성격과 아픈 곳을 찾아냈다. 그에 필요한 침과 쑥뜸을 무료로 해주셔서 도움을 받았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꼬옥 찾아가 진맥을 하고 어디가 아픈지 알아보라 당부를 했다. 그와중에 그녀의 생년월일을 물어 사주를 보고 싶었다. 주책이다. 꾹 참고 지하철에 올랐다. 의자에 손바닥을 대고 반쯤 쓰러지듯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하던 그녀가 무탈하길 빌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이었다. 원당역쯤에서 갑자기 비상벨이 울려 차량내 환자가 발생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역원이 알아보고 있으니 기다리는 말과 함께 5분여 흘렀다. 출근길 5분이라니.. 지각이겠구나 싶었다. 그 안에 탄 사람들이 대략 천 명이 넘었을까? 모두들 초조함을 숨기고 핸드폰에 열중했다. 출근길에 아프다니 누군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여 지나 출발 했고 환자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를 따라 오던 지하철 직장인들 모두 늦었을 것이다.
그때 비상벨의 주인공이 그녀가 아니였을까 싶었다. 비슷한 시간, 비슷한 칸, 비슷한 역에서 벌어졌으니 유추하게 됐다. 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 한 사람이 쓰러진다는 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반응을 주는지 실감했다.
불광역쯤 왔을때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유독 명랑하고 활기하게 누군가를 배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로를 내달리는 쇠소리를 잠재우는 상큼한 소리였다. 꽤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발 디들 틈 없는 사람들 사이로 옅은 베이지톤 털뭉치의 움직임이 보였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패찰을 단 안내견을 데리고 여학생이 두터운 배낭을 매고 탔다. 안내견은 사람들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소리없이 앉았다. 지하철이 움직일때마다 휘청거리는 발이 안내견을 밟을까 애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복잡함을 감지했는지 안내견을 일으켜 세웠다. 시각장애인 학생은 검지로 핸드폰을 일정하게 두드리며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스크로 눈을 가린 사람, 졸도해서 쓰러진 여성, 치열한 시간에 동행하는 안내견, 오지랖떨다 지각한 나, 밀도있게 다채로웠다. 그는 한숨 잤을까? 그녀는 정신을 차렸을까? 안내견은 무사히 하루일과를 마쳤을까?
아플 때 혼자 견디고. 혼자 감내하지 않고,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기를,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절히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