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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탔던 자전거

#자전거 #운동장 #집착 #창릉천 #북한산 #둔내막국수 #카페309

by 가쇼

어렸을 때다. 나는 기필코 자전거를 타겠다는 집념으로 엄마의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높이의 자전거에 올랐다. 발을 구르자 마자 옆으로 쓰러졌다. 체인에 종아리가 찢겨 피가 났다. 메마른 흙이 상처 위에 덧대여졌다. 다시 올랐고 또 쓰러졌다를 반복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시골 길은 자갈과 빗물에 씻겨 냉면 그릇처럼 파인 곳이 많았다. TV에서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보면서 내가 살던 옛날 시골길보다 좋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리막길은 좁고 억센풀들이 걸림돌처럼 차지했다. 자전거가 제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종아리에 흉터가 늘어났다.


자전거를 타는 열망은 꿈으로 이어졌다. 꿈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안정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펼쳐졌다. 더운 여름 적막한 시골길은 윙위대는 파리 소리와 새소리, 풀벌레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퇴약볕이이 바늘처럼 어깨와 등허리에 내리 꽂혔다. 꿈에서 타고 현실에서 넘어지는 자전거와 씨름이 계속됐다.


어느날 오빠가 자전거 뒤를 잡아줄테니 올라 타라고 했다. 패달을 밟으라고 했다. 뒤에서 잡아주니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른발, 왼발 밀 때마다 전진하는데 앞바퀴가 좌우로 흔들렸다. 패달을 보지 말고 정면을 응시하라고 했다. 달리는 속도감이 신선했다. 그러다 오빠가 손을 놨다. 그 원동력으로 중심을 잡고 나아갔다. 하지만 멈추는 법을 몰라 휘청거리며 풀 숲에 쓰러졌다


한번 중심을 잡으니 뒤에서 잡아주지 않아도 탈 수 있었다. 멈췄다 내려오는 법만 익히면 됐다. 자전거를 탔다는 사실이 기뻐 학교로 끌고 갔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데 장애물을 피하는 법이 서툴러 배구대에 들이 받았다. 자전거 앞바퀴가 휘었다.


고장난 엄마의 자전거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중심 잡기는 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자전거 태울 생각부터 했다. 세발 자전거를 시작해 두발 자전거까지 뭐가 급했는지 서둘러 조기 교육을 시켰다. 자전거 못타는 뒷 집 아이도 호수 공원에 데려가 가르치기도 했다.


이제는 내 나이가 쉰 넷이다. 해가 갈수록 자전거를 타고 장애물을 피해 질주하던 감각은 시력이 떨어지듯 흐릿해지고 있다.


"자전거 한번 타러 갈까요?"


"좋아요!"


5월 가정의 달 연휴를 맞아 지인들과 일정을 잡았다.


KakaoTalk_20250505_114307715 (1).jpg 북한산 공릉천 자전거 길


경의선 능곡역에서 한강시민공원에서 북한산으로 가는 창릉천 길은 한폭의 드라마틱 하다. 한강시민공원처럼 사람들이 바글대지도 않았고 북한산 정경이 눈 앞에 펼쳐져 지칠 줄 몰랐다. 이 길은 북한산성입구까지 이어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둔내막국수에서 점심을 먹고 마무리를 지었다. 창릉천 양쪽에 들어선 삼송,원흥지구 아파트가 시야를 가려도 답답하지 않고 예뻐 보였다.


KakaoTalk_20250505_125023998_01.jpg 북한산 309카페


중간 중간에 사진을 찍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포즈를 취했다. 요즘은 성적인 농담도 검열을 당하고 정색을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나도 모르게 바르게 섰다가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들이밀었더니 고관절과 허리에 담이 와서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날 찍은 사진은 말기 암투병 중인 환우들에게 공유돼 그녀들의 엔돌핀을 돌게 했다.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지만 통증에 시달리는 순간을 잊으며 재미난 소재가 됐다.


이날 38km를 탄 셈인데 다음날 시체처럼 뻗어 낮잠을 잤다. 노는데 다 때가 있다. 삭신이 쑤시지만 내 몸의 아우성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다.


KakaoTalk_20250505_153223042_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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