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만 하는 것이 가수의 일이 아니다.
"나는 왜 맨날 야근을 할까? 내 일도 아닌데 팀장이 자꾸 일을 줘 ㅠㅠ"
" 일 잘하는 거 들켰구먼. 거긴 남의 일 잘한다고 대우받는 자리가 아니잖아~"
친한 친구의 전화에 대답하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일 잘하는 걸 들켜 회사 생활 망한 사람 여기 있는데 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다닌 마지막 회사에서 난 일을 열심히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남자 중심의 사내 문화라 회식과 번개가 많았는데, (비혼의 30대 여자가) 번개와 회식에 참석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일에서 바늘 하나 허점도 보여서는 안 된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회식에서 나의 뒷소리가 나오는 것을 감수하고 대신 일에서는 1도 아무 소리 못하게 하리라 다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하니, 그 자리는 완벽하게 일을 마치는 것보다 유관부서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한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력으로 들어와 혼자 내 일만 열심히 하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껄끄러울 수 있었다. 그곳은 신입으로 들어와 정년을 마치며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회사였던 것이다.
친구의 볼멘소리에 나는 너의 일은 무엇이고, 팀장이 자꾸 주는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사내에 내 친구는 열정도 많고 손이 빠른데 다른 팀원은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는데 성격만 더러운 사람이었다. 어차피 공무원 같은 회사였고, 일을 하지 않아도 잘릴 염려가 없다는 것을 간파한 그 팀원은 팀장과 회식을 하며 그 대가로 뺀질거리고 있었고, 이에 팀장은 그 일을 몰래몰래 친구에게 다 넘기는 상황이었다.
"네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너의 고과에 영향을 주니? 임원 분은 네가 이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 너는 지금 이 일을 하느라 몸살이 나서 주말 내내 누워있고, 링거를 맞는데 그 팀원은 고마워라도 하니? 그 자리에서 네가 얻고 싶은 것은 뭐야? 네가 얻고 싶은 것에서 지금 옆 팀일을 떠안아 버리는 게 어떤 도움이 되지?"
이렇게 세게라도 말하는 이유는 나 역시 저 틀 안에 갇혀본 적 있고 또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기 때문이다.
코칭을 하다 보면 이렇게 내가 응당 해야만 하는 일을 넘어서 할 필요가 없는 남의 일까지 자신이 하면서 종종 자신의 몸과 마음을 헤치고 힘들어하는 분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패턴은 대부분 비슷하다
1. 워래 성격이 선하다. (잘 싸워본 적 없다. 싸움을 싫어한다. 내 의견을 내서 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
2. 부모님은 엄격하고 보수적이어서 순종적인 10대를 보냈다.
이런 분들은 어렸을 적부터 윗사람의 엄격한 주문을 성실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수행했을 것이다. 머리가 엄청 좋고 잔머리가 뛰어나다기보다는 자신이 노력해 그 자리까지 간 분이 많다. 대학교를 성실하게 졸업해 취직한 대부분의 사람은 회사에 들어가도 이제까지 공부를 하듯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직장 생활에서 나와 보니 이제야 보인다. 나의 자리는 일 자체의 테크닉이 중요한 자리일까? 타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인 자리일까? 리더십을 원하는 자리인가.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것을 하고 있는가?
일을 해야 하는 곳에서 정치만 한다거나 정치가 필요한 곳에서 정작 일처리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은 제 자리에 최선을 다하는데 회사가 몰라준다며 억울해하는 경향이 많다. 모든 회사는 공식적으로 일을 잘하는 것과 맥락적으로(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 일을 잘하는 것의 평가는 다르다. 다른 것을 원하는 자리에 일만 잘하는 것으로 승부 보려 하면 주변인들이 "그래 그럼 일 잘하는 네가 일을 더해"라고 하며 자신의 일을 던져주고는 자신은 다른 종류의 일(윗 분과의 술 약속. 타 팀과의 유대, 커뮤니케이션, 등)로 자기 나름의 승부 볼 수 있다.
가수의 예를 들면 쉬우려나. 노래를 잘하면 가수의 꿈을 꿀 수 있다. 그러나 가수로 성공하려면 외모도 어느 정도 가꿔야 하고, 퍼포먼스도 배워야 한다. 또한 자신의 기획사나 방송국 사람들과 유대관계도 잘 맺고 주변 스테프를 챙기며 팬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도 다 가수의 일 일수 있다. "난 노래 잘하는데 사람들 관리하는 저 사람보다 내가 왜 인기가 없는 거야?"라고 말을 한다면 아마추어에서 프로가수의 일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의 일만 잘하는 것을 회사에서는 원하지 않는 곳도 많다. 옆 팀과 커뮤니케이션도 잘하고 팀장이 돼서는 팀원들을 잘 관리하는 리더십도 보이고, 때로는 모르는 분야에서도 의사결정을 잘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니 학생 때처럼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하다는 일만 가지고 승부 보려 생각하기보다 더 큰 판을 보려는 노력을 해보기를. 나의 시선이 아닌 위의 시선으로 내 자리를 판단해보기를.
일만 잘하면 되지 그런 걸 생각하냐고? 성경에도 뱀처럼 지혜로워라.라고 했다.
내가 그걸 못했다.
나만 못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