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잘못했네'란 말을 그렇게 했어야만 했나요?

내용이 아니라 태도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by 양소영 코치

“네가 잘못했네”


“네? 제가요? 왜요? 뭘 잘못해요?”


그분은 서류를 찾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2m쯤 옆에 있는 책장을 뒤지며 등 뒤에 있는 나에게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잘못했지. 지금 이게 잘한 거니? 회사에서 일을 시킨다고 그렇게 밤새서 일을 하다 쓰러져? 보통은 상사가 그렇게 일을 시키면 회사를 안 나가거나 자기가 혼자 가서 입원하거나 사표를 내거나 상사를 한 대 치기도 하지. 넌 널 지키기 위해 한 것이 뭐가 있니? 몸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그 일을 시킨다고 다 하는 애가 어디 있어?”


“아니.. 회사 다니는데 어떻게 시키는 일을 안 해요??? “


“다 안 하는 수가 있지. 다들 안 해. 네가 문제야. 시킨다고 한 너. 그래서 몸 아픈 거다. 네가 스스로 저지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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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회사를 다니다 번아웃이 왔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분출하는 방법도 몰라 그저 참으며 꾸역꾸역 출근을 하던 아메바 같던 삶이었다. 회사에서 두 번쯤 쓰러지고 세 번째 쓰러진 날, 회사 가까운 S병원에서 CFS(만성피로 증후군) 이란 진단을 받았다. 회사를 다니기는커녕 누워있는 것도 고통이었다. 숨만 쉬어도 온몸이 두둘여 맞은 듯 아팠다. 화장실 갈 힘은커녕 물 마실 힘도 없어서 물도 먹지 않은 채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서 온몸을 휘몰아치는 고통을 감내하며 지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온몸이 아픈 섬유근통증후군도 같이 오고 한국에서 딱히 치료할 곳은 없으니 결국 마음까지 만신창이가 되었다.


30대 초반인 내가, 그렇게 고생해서 이제 좀 회사 다니면서 돈 좀 벌어보겠다던 내가 하루아침에 쓰러져 이렇게 침대에서 진통제가 먹고 누워 있는 것이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 내 인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진통제를 털어놓고 여기저기 닥터 쇼핑을 했다. 그 와중에 공황 장애를 치료하는 인지행동 치료가 만성피로 증후군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공황장애 전문 정신과이었는데, 정신과라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뭐가 더 무서운가? 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가보았다.


그 병원의 세미나를 들으려면 무조건 원장님과의 면담을 해야 했다. 비용도 아마도 10분에 4만 원이었나. 20분에 8만원이었나... 백수 환자에게는 선뜻 낼 수 없는 꽤 비싼 비용이었다. 그 당시 여기저기에 치료비를 엄청 쓰던 나는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어 안 하면 안 되겠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았지만, 원장님 면담이 있어야만 세미나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결국 듣게 되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심리상담 조차 받아보지도 않았던 때인지라 TV에서 보던 정신과 의사의 따뜻한 말, 어떤 이야기라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해줄 것 같은 얼굴… 같은 것을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단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 돈을 받는 것을 보니 10분 안에 나를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고민하던 끝에 만난 유명세만큼 바쁜 척을 하는 그 원장님은 내가 앉기 전부터 사전 미팅 후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서류에 코를 박고 이렇게 이야기 하셨던 것이다.


그 원장님 입장에서는 정신과에서 상담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나는 너무 미미한 경증이었고, (그는 7번 자살 시도한 남성의 상담을 막 끝냈다.) 그분 또한 세미나를 듣기 위해 하는 1회성의 의례적인 상담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10분의 상담 시간 동안 한 번도 나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직장, 친구, 인생을 다 포기하고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나로서는 발가벗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채찍으로 맞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뒤통수를 철 망치로 맞았다면 이런 아픔일까. 심리적 아픔이 물리적으로 명치를 맞은 듯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이미 1년 동안 침대에 누워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길래 이렇게 몸이 아픈 거지? 무엇을 잘못했길래 벌을 받는 거지?"


를 매일매일 생각했던 나로서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 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이 필요했던 시기에..


전문가인 그는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집에 와서 며칠을 엉엉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일 열심히 한 거밖에 죄가 없잖아.



몇 년 후 회사에 돌아간 후 그 날을 더 많이 생각했다. 대리로서 사원에게 이야기할 때도 그 날을 되새기곤 했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이 듣는 이 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내가 무심코 하던 행동이나 말투가 (비록 내가 옳은 말을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누구는 평생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연차가 늘어가며 내 아래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 날을 생각한다.


말을 할 땐 꼭 얼굴을 보자.


예민한 이야기를 할 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 이야기하자.


이성적인 분석보다 감정적 지지를 먼저 해야 한다. 이성적인 분석도 그가 준비가 되어 있을때 하는 것이다.


그의 성장을 위한다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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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역시나 매일 매일 생각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상처를 받았던 그 원장님의 말은 사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상담을 한다면 결국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당신이 바뀌어야만 똑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것이다.


그 의사분은 나를 살리고 싶어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적어도 자기의 이야기로 내가 몇 년을 아파하면서 지냈을 거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보았던 수많은 환자보다 나는 너무 정상적이고 일반인이었을 테니.


그리고, 실제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서 말의 의미 (contents)는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도 생각한다. 52%의 body languae, 38%의 voice tone을 함께 생각하며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다르게 쓰일 수 있을지 매일 생각한다.


코치가 되면서 더 그렇게 사람을 대하지 말자는 것을 10년이 지난 요즘도 생각나는 것을 보니 어쨌거나 그분이 나에게 단 10분의 시간 동안 큰 깨달음을 준 것은 맞는 것 같다.




메라비언의 법칙:심리학자이자, UCLA 교수였던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이 발표한 이론으로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나 호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보디랭귀지는 55%, 목소리는 38%, 말 내용은 7%만 작용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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