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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목표의 두 얼굴

보이지 않는 목표의 함정, 그리고 성장의 시간

by 김용진

Ⅰ. 목표가 조직을 흔드는 순간


회사는 언제나 목표를 세운다.
성과를 내고, 문제를 개선하고,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목표는 성과를 내는 대신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겉으로는 옳은 말인데, 실행할수록 조직이 굳어지고 분위기가 냉각된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역설적 목표,
이것이 바로 ‘마이너스 목표’다.


‘야근 없는 조직’, ‘고객 불만 제로’, ‘성과 1등 팀’.
듣기엔 멋지지만, 실제로는 성과 왜곡과 냉소를 낳는 문장들이다.

야근을 없애겠다는 선언이 보고 회피를 낳고,

고객 불만 제로가 데이터를 숨기게 만들며,

성과 1등 조직은 협업을 끊어버린다.


조직의 피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데, 이상하게 모두의 에너지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목표, 정말 우리를 앞으로 가게 하고 있는 걸까?”


Ⅱ. 좋은 의도, 나쁜 결과


모든 마이너스 목표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다.
‘공정’, ‘투명’, ‘효율’, ‘고객 중심’... 누가 봐도 옳은 말이다.

하지만 실행 구조가 뒤틀리는 순간, 그 목표는 독이 된다.

‘보고 정확도 100%’는 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지만,
실수를 숨기고 책임을 피하게 만든다.

‘불필요한 회의 줄이기’는 효율적이지만,
정보가 단절되며 의사소통의 결핍을 낳는다.

‘비용 10% 절감’은 재무 건전성을 위해 좋지만,
현장 품질이 흔들리고 핵심 인력이 떠나간다.

‘평가 공정성 100%’는 신뢰를 약속하지만,
결국 누구도 과감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좋은 단어들이 나쁜 결과로 변할 때,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 있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수록, 좋은 목표는 왜곡되고
사람은 그 틀 안에서 지친다.


Ⅲ. 마이너스의 또 다른 얼굴 — ‘투자형 목표’


그러나 모든 마이너스가 나쁜 건 아니다.

겉으로는 손실처럼 보여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투자로 작동하는 목표가 있다.
이른바 ‘투자형 마이너스 목표’다.


학습 시간을 확보하느라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장기적 혁신의 근육을 만든다.
R&D 투자는 회계상 지출이지만, 미래 매출의 씨앗이다.


고객 신뢰를 위해 제품 판매를 잠시 중단하는 것은
단기 실적엔 타격이지만, 브랜드 자산은 오히려 단단해진다.


기업의 역사 속에도 이런 ‘시간의 투자자들’이 있다.

삼성전자는 매출보다 기술 리더십을 우선하며 반도체 초격차를 구축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투자로 당기이익이 줄었지만, 전 세계 문화 플랫폼이 되었다.

파타고니아는 매출보다 환경을 선택했고, 그 신념이 브랜드를 키웠다.

토요타는 30년간 TPS 생산철학을 지켜내며, 세계 제조의 표준이 되었다.

한솔케미칼은 신소재 연구에 장기 투자하며, 단기 이익보다 구조 전환을 선택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마이너스의 시간은 손실이 아니라 체질을 바꾸는 시간이었다.

조급하지 않았고, 긴 안목을 가졌다.
‘성공’보다 ‘지속’을 선택했다.


Ⅳ. 두 얼굴을 구분하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이너스를 버리고, 어떤 마이너스를 견뎌야 할까.
기준은 단 하나, 시간의 방향성이다.


단기 성과만을 위한 마이너스는 조직을 피로하게 한다.
하지만 장기적 투자로서의 마이너스는 조직을 성장시킨다.


‘고객 불만 제로’는 왜곡된 KPI지만,
‘고객 불만 학습률 향상’은 혁신의 출발점이다.
‘교육 이수율 100%’는 형식이지만,
‘학습 전이율 향상’은 진짜 변화다.
‘보고 정확도 100%’는 통제지만,
‘투명한 실패 공유율 향상’은 신뢰다.


조직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거다.

“이 목표는 우리를 피로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단단하게 만드는가?”


숫자는 표면의 성과를 보여주지만,
그 목표가 만들어내는 문화는 시간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조직만이
단기 실적의 굴레를 벗고 장기 생존의 길로 들어선다.


Ⅴ. 마이너스를 견디는 용기


조직의 성장은 직선이 아니다.
때로는 돌아가고, 멈추고, 후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성찰의 간격이다.


마이너스 목표를 피하려 하기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시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손실의 시기, 침묵의 구간, 비효율의 순간 속에서
조직은 다음 도약의 근육을 단련한다.


마이너스는 결국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 리더와 조직만이
변화의 시대를 끝까지 버텨낸다.


진짜 리더십은 손실의 시간을 견디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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