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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훈 Aceit Sep 07. 2017

자격증 공화국

자격증 제도는 어떻게 취업 시장을 어지럽히는가


대한민국은 영어 관련 자격증을 통해서도 충분히 레슨을 받지 못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비전에 맞추어 엉뚱한 '빅데이터 자격증' 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참고링크: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70906083233&type=det&re=)


재미있는 인연이지만 나는 얼마 전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에 대한 비판의 글을 이미 블로글 통해 실은 적이 있다. 조국의 정책에 대해 일부로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좋은 정책이 있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알리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그러나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애매모호한 비전에 맞추어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의견을 더한다.



자격증은 정말 보증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자.

도대체 자격증이 왜 필요한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인재를 제대로 평가할 자신이 없어서다.


아래는 링크로 첨부한 빅데이터 자격증 관련 기사의 일부이다.


"통계청은 빅데이터 산업 인력 가운데 '빅데이터 분석' 분야에 해당하는 역량을 검증하는 국가인증자격을 만들려고 한다. 역량을 판단하는 방식은 물론 자격검정시험이다. 통계청이 마련한 검정시험 구성안은 빅데이터 개념 이해, 분석 프로젝트 기획, 데이터 수집·저장·처리, 데이터 분석 및 통계·시각화, 4가지 필기과목과 별도의 1가지 실기과목을 포함한다."


데이터 분석을 공부 해 본 사람들은 이 자격증이 가져올  비효율성에 대해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분석 프로젝트 기획' 이라는 부분을 시험 항목에 넣은 것 부터 정책을 수립하는 쪽에서 얼마나 데이터 분석에 대한 이해가 없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분석 프로젝트 기획'은 데이터 분석가 혼자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외국의 유명한 데이터 분석가를 초청하더라도 분석가 혼자서 프로젝트 기획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부분이다.

'빅데이터'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Raw Data 자체를 바로 해석할 수 있는 수치형 데이터는 이미 대부분의 기업 실무에서 엑셀 소프트웨어를 통해 분석을 하고 있다. 빅데이터라 하면, 기본적으로 엑셀을 통해서 수치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웠던 범주형 데이터, 혹은 비정형적 데이터(이미지, 음성, 영상, 텍스트)등을 분석 범위에 포함함을 뜻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범주형 데이터만 해도 (조금은 기술적인 이야기가 될수 있지만...) 해당 데이터를 순서형 데이터로 취급할 것인지 개별적인 Feature로 취급하여 차원을 높일 것인지 단순히 데이터만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에는 현업 담당자의 지식(Domain Knowledge)과 데이터 분석가의 경험적 지식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결국 실제로 데이터를 보고, 실무진들과 직접 이야기를 해보고, 이후 여러 trial and error를 반복하며 평가점수(Evaluation metrics)를 높이는 노가다를 해보기 전에는 어떤 방법이 옳을지 판단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과연 이런 부분은 '빅데티어 분석가' 자격증 취득자는 해결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매우 부정적이다.


또한 자격증에 '실기과목'을 포함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말 하고 있으나 최근 데이터 분석의 트렌드를 보면 매년 새로운 기법이 나오고, 분석하는 도구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다. 

공인 자격증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검증되고 전통이 오래 된 기법들을 소개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런 기법들이 기본 지식으로 활용성이 있다는 점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으나, 성능 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이론적으로 아직 덜 검증되었더라도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추세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변화 속도를 고려하였을 때 자격증은 별로 적합하지 않다. 


자격증 제도가 낳는 부작용


앞에서 이야기 했듯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면접관이 지원자의 역량을 단순 면접을 통해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이 문제는 효율성(Efficiency)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법률가나 의사의 경우 전문성에 대한 판단을 자격증이 아닌 일반인의 개인적 판단에 맏길 경우 각 국민이 관련 지식 취득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높아질 수 있다. 이는 명백한 비효율을 야기한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단순히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젊은 의사들보다 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관련 질병에 대해서 연구 경험이 많은 전문의를 선호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항에서 의학, 법률과 차이가 있다.

정답이 너무나도 Customize되어 있다:  법률의 경우 개정되기 전에는 변하지 않고 의학의 경우 정답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계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며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정이 매우 보수적이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은 사실상 같은 문제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같은 데이터를 사용하더라도 목적에 따라 분석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방법론 측면에서도 최근에는 성능(예측력)은 높게 나와도 그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비지니스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결과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분명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는 존재한다. 따라서 정해진 답을 찾아 득점을 올려야 하는 자격증 시험 도입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트렌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앞에서 이미 강조한 부분이다. 엄밀히 말하면 데이터 분석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시작된 것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 후에 딥러닝에 대한 관심이 퍼진 후이다.  그런데 특히 딥러닝 분야는 데이터 분석 분야 내에서도 트렌드 변화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이미 책을 통해서 최신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고, 실무에 있는 사람들도 유수 대학의 교수들의 최신 논문을 보며 구현해보고 따라해보는 수준인데 이보다 한참 뒤쳐진 자격증 시험이 과연 이런한 트렌드를 얼마나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 나 같아도 자격증 취득자보다 논문 보고 알고리즘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자격증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왜 자격증이 필요한지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업에서 특정 인재에 대한 명확한 수요가 있다면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이 있는지를 면접관이 판단하면 된다. 실제로 경력직의 경우 거의 이런 식으로 면접이 이루어진다. 1,2차 면접관은 실무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실무진들은 적어도 자신의 팀에 들어오려면 알아야 하는 기본지식과 역량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빅데이터 자격증' 이라는 무의미한 스펙에 휘둘릴 가능성이 적고, 자신들이 풀려는 문제에 대해서 해당 지원자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직접적인 질문을 통해 파악할 것이다.


결국 이런 자격증이 신설되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타겟은 공채를 통해 선발되는 '신입사원'이 된다. 

어느 부서로 갈지도 모르는... 애매모호하게 그냥 상대적으로 기업에 더 적합한 인재를 뽑아야 하는 공채 시스템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관계없이 선발을 해야 하는 면접관들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이는 지표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이를 파악한 젊은 취준생들은 이미 넘치고 넘치는 자격증에 또 다른 자격증을 추가하기 위해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자격증은 정말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가 되지도 못할 뿐더러, 이 자격증에 힘 입어 취직한 신입사원들의 90%는 자격증과 관련 없는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로 배치되어 금세 공부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말이 안된다고??? 요즘 공채를 통해 뽑히는 대기업 지원자들은 공장으로 가든 출장 한 번 안나가고 국내에서 영업을 하든 기본적으로 '토익 고득점자'라는 것을 기억하자.

빅데이터 분석 공인 자격증은 그저 또 다른 '토익'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결책


궁극적인 해결책은 시장에 맏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같은 연봉이면 더 뛰어난 인재를 고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어떻게 인재를 선별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자격증 제도는 오히려 면접관들에게는 혼돈을 주고 지원자들에게는 귀중한 시간과 집중력을 빼앗을 뿐이다.


자격증이 필요한 경우는 인재 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아서 면접관들이 일일이 지원자들의 역량을 평가할 시간이 없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직무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할 때 뿐이다. 

국가가 원하는 것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 휴학을 하고, 석사/박사 등 고등 학력을 취득하고, 그렇게 나이만 들은 인재들이 대기업에 몰리는 것이라면 '자격증 제도'가 매우 효과적인다. 우리나라 정서상 자격증 제도가 생기면 사교육 시장은 금새 적응하고 오프라인/온라인 할 것 없이 무료교육(Coursera등) 보다 한참 뒤쳐진 과정을 선보일 것이며, 그저 취업 자체가 걱정되는 취준생들은 어떻게든 자격증을 따고자 몰려들 것이다. 이는 트렌드에 휘둘리는 대학의 전공, 다양성보다 평준화를 시키는 공공교육 시스템, 대기업, 공채 중심의 취업시장 등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정책이든 전략이든 처해진 '상황'에 맞추어야 하는데, 공인자격증 제도는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든 방향이다.


현재 정치권에서(여야당을 구분하지 않고) 부르짖는 미래는 '창조적 인재'에 기반한다.

장담하건데, 창조적 인재를 배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자격증 제도 신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데이터 분석도 결국 스킬이다. 그리고 스킬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경험을 얻으려면 취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자격증 제도는 오히려 취직을 어렵게 만든다. 이 무슨 넌센스인가?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수요는 있으나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견/중소 기업들이 데이터 분석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말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 분석가를 배양하고 싶은 것이라면 중소기업에 더 많은 데이터 분석가들이 취직하여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원들이 돈을 벌게 하지 말고 기업들이 돈을 벌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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