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경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친구들과 쳇을 하다 SNS를 열었다.
오랜만이었다. 여행 내내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피드를 스크롤했다. 친구들의 게시물이 보였다.
· 민수: 새 차 샀다. 벤츠 E클래스. 사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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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영: 승진했어요! 이제 과장님이라 불러주세요 ㅎㅎ (좋아요 83개)
· 현우: 제주도 3박 4일. 호캉스 완전 힐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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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고 있었다. 좋은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불편했다. 왜?
예전 같았으면 부러웠을 것이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나는 뒤처지고 있는데.' 그런 생각. 조급함. 불안.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뭔가 허전했다.
공허했다. '이게 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행복한가?
비싼 차를 사면 만족스러운가? 승진하면 충만한가?
나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좋아요'도 누르지 않았다. SNS를 닫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나의 방식이.
지금까지 나의 삶의 방식이.
안동에 도착한 버스는 하회마을로 향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했다. 600년 된 마을이라고 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기와집들. 흙담장. 좁은 골목.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 현대적인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천천히 걸었다. 한 고택 앞에 멈췄다.
'양진당'. 안내판을 읽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 풍산 류 씨 가문이 400년 넘게 거주."
400년 된 같은 가문이. 같은 집에서 살았다. 놀라웠다.
나는 서울에서 3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동네, 더 편한 곳으로 계속 옮겼다.
정착하지 못했으며, 이리저리 이동해야만 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마당을 쓸고 계셨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지만, 여기 사세요?"
"응. 여기 살지."
"오래 사셨어요?"
"태어날 때부터. 칠십 년."
칠십 년. 한 곳에서.
"... 한 번도 다른 데 안 살아보셨어요?"
"왜 가? 여기가 좋은데."
"답답하지 않으세요?"
할머니가 웃으셨다.
"답답하긴. 도시가 더 답답해. 빽빽하고, 시끄럽고."
"그래도 여기는... 뭐 없잖아요. 편의점도 멀고, 카페도 없고."
"그게 필요해? 밥 먹고, 일하고, 자는데. 다 있어. 여기."
할머니의 단순함이 충격이었다.
밥 먹고, 일하고, 자는 것. 그게 다라고 했다.
나는 뭘 필요로 했을까?
편의점, 카페, 배달, 넷플릭스, 최신 스마트폰, 빠른 인터넷.
사실 이게 없으면 불안했다. 불편했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건가?
아니면 필요하다고 믿도록 만들어진 건가?
"젊은 사람은 여기 못 살아. 다 나가." 할머니가 말했다.
"왜요?"
"심심해서. 할 게 없어서. 돈도 못 벌어"
"할머니는 외롭지 않으세요? 젊은 사람들 다 나가면."
"외롭지. 근데 어쩌겠어. 그 사람들도 살아야지."
할머니는 다시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천천히. 꼼꼼하게.
급할 게 없었다. 나는 마을을 계속 걸었다. 모든 집이 오래되었다.
모든 것이 느렸다. 사람도, 시간도, 공기도.
한 카페에 들어갔다.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다.
주인은 서른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아메리카노 주세요."
커피를 기다리며 물었다.
"여기 사세요?"
"네.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3년 됐어요."
"왜 내려오셨어요?"
주인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지쳤어요. 서울에서."
"뭐가요?"
"모든 게요. 경쟁, 비교, 속도. 맨날 쫓기는 기분이었어요. 뭔가 이뤄도 만족 못 하고. 계속 더, 더, 더."
정확히 내 얘기였다.
"근데 여기는 어때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심심하고, 할 게 없고. 후회도 많이 했어요.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지?' 그런데..."
"그런데요?"
"1년쯤 지나니까 보이더라고요. 뭐가 중요한지. 서울에서는 안 보였는데."
"뭐가 보였는데요?"
주인이 창밖을 가리켰다.
"저거요. 계절이 바뀌는 소리.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초록으로 물들고, 가을에 울긋불긋한 단풍과 함께, 겨울에는 하염없이 내리는 하얀 눈을 느낄 수 있어요. 서울에서는 몰랐어요. 계절이 바뀌는지도."
맞았다. 언제 봄이 왔는지. 언제 가을이 왔는지 나도 몰랐다.
늘 실내에 있었고, 늘 바빴고, 늘 화면만 봤다.
"그리고 사람들이요. 여기 사람들은 느려요. 급하지 않아요. 처음엔 답답했는데, 지금은 좋아요. 그 느림이."
"여기서 돈은 어때요? 많이 버세요?"
주인이 웃었다.
"적죠. 서울 다닐 때 반도 안 돼요. 근데 쓸 데도 없어요.
여기는. 그리고... 돈보다 중요한 게 있더라고요."
"뭐요?"
"평화요. 마음의 평화.
서울에서는 돈 많이 벌었는데 맨날 불안했어요.
여기서는 적게 버는데 평화로워요."
커피가 나왔다. 마셔봤다. 맛있었다.
천천히 마셨다. 주인은 다른 손님을 응대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 방식이 뭐가 잘못됐을까?
더 많이 벌기. 더 높이 올라가기. 더 많이 갖기.
더 빨리 가기. 그게 내 방식이었다.
그게 성공이라고 배웠다.
그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더 많이 벌어도 만족 못 했다.
더 많이 가져도 허전했고, 더 빨리 가도 끝이 없었다.
왜? 방향이 틀렸으니까. 목표가 잘못됐으니까.
경주 불국사 할아버지가 말했다.
"조금씩. 어제보다 조금만 나아지면 돼요."
나는 '많이'를 추구했다. 조금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많이 벌고, 많이 이루고, 많이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많이는 끝이 없다. 아무리 가져도 더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여수 스님이 말했다. "너무 쥐지 말기."
나는 모든 걸 쥐려고 했다. 통제하려고 했다. 놓으면 잃을까 봐.
그래서 손에 힘을 주고 살았다. 피곤했다.
담양 대숲에서 적었다. "나는 작아도 괜찮다."
그런데 나는 커지려고만 했다. 작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크고, 많고,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치라고 배웠다.
메모하고 나니 조금 슬펐다. 이게 30년 이상을 살아왔던 나였다.
잘못된 방식으로.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바꿀 수 있을까?
카페 주인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표정이 안 좋으신데."
"아, 네.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여행 중이시죠? 혼자?"
"네. 나를 찾으러요."
주인이 웃었다.
"저도 그랬어요. 나 찾으러 여기 왔어요. 찾으셨어요?"
"조금요. 그런데... 잘못 살아온 것 같아서요."
"잘못 산 거 아니에요."
"네?"
"그렇게 살아봤으니까 이제 다르게 살 수 있는 거예요. 안 살아봤으면 몰랐을 거예요. 뭐가 잘못됐는지."
그 말이 위로가 됐다. 맞다.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다.
잘못이 아니라 배움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 거예요?" 주인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근데... 다르게요. 조금씩이라도."
"잘하실 거예요. 벌써 깨달으셨으니까."
카페를 나와 마을을 다시 걸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주황빛이었다. 기와집 위로 석양이 졌다. 아름다웠다.
한 집 마당에서 할아버지가 손자와 놀고 있었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언제 저렇게 웃었나? 진짜로. 꾸민 게 아니라.
SNS에 올릴 게 아니라. 진심으로.
기억이 안 났다. 오래전이었다. 너무 오래전.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결심했다. 바꾸자.
완벽하게는 못 바꿔도 조금씩.
덜 비교하기. 덜 쫓기기. 덜 욕심내기. 더 느끼기. 더 감사하기. 더 만족하기.
그리고 어디든 한 곳에. 정착하기. 이사 그만하기
직장 자주 안 옮기기. 관계 오래 유지하기
하회마을 사람들처럼. 400년, 600년을 한 곳에서.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고.
아니,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지키는 거다.
이게 본질이고, 중요한 삶의 가치라는 것을 알았다.
버스에 타고 창밖을 보니 하회마을이 멀어졌다.
기와집들이 작아졌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그 마을이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다짐. 나도 지키고 싶다.
중요한 것을. 가족, 친구, 건강, 평화, 나 자신.
더 많이가 아니라 충분히. 더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
더 크게 가 아니라 깊게.
그게 내가 찾은 새로운 방식이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안동이 내게 준 것. 잘못된 방식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가능성을 보는 것.
충분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