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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노 May 22. 2020

회사의 일은 회사의 것

회사와 집을 분리하기

월요일이다. 출근하는 길이 피곤하긴 했지만 주말을 알차게 놀아서 그런지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먼저 와있는 직원 두 분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웃고 농담도 하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일과를 보내려는 찰나 업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본사 과장님께 텔이 왔다. 그것도 아주 길게. 저번 금요일에 작업을 한 업무에서 실수를 해서 거래처에서 컴플레인이 걸려온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좀 해달라며 아주 긴 문장을 보내왔다.

 

조심하겠다는 텔을 보내고 업무를 하는데 이번엔 단체 톡방에서 내가 한 실수와 관련해서 조심해달라는 글이 떴다. '알겠습니다'라는 텔을 다시 보내고 업무를 하려는데 이번엔 우리 사무실의 과장님께서 텔이 왔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진행해 달라는 말이었다. 몰랐으면 당연히 물어봤겠지만 모르는 걸 몰랐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또다시 "알겠습니다."라고 텔을 보냈다. 그리고 뒤이어 이번엔 주임님에게서 텔이 왔다. 다른 업무 건으로 조심해달라는 말까지 듣고 나니 아침에 행복한 기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또다시 실수할까 봐 불안해하며 '나는 왜 이렇게 실수를 할까. 다른 분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회사는 나의 무능한 부분을 끊임없이 증명해보려고 하고 나는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굳은 다짐을 가지고 일을 한다. 실수할까 무서우며 혼날까 무섭고, 다른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이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면 '회사에서의 속상하거나 화나는 일로 망친 기분을 집까지 끌고 오지 말자'였다.


회사의 일은 회사의 것, 집에선 집에서 만의 일이 있기 때문에 분리를 해두어야 한다. 분리가 되지 않는 이상, 회사가 나인 것 같고 내가 회사인 것 같고 회사가 우리 집인 것 같고 우리 집이 회사인 것 같은 혼동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오전에는 우울하다가 오후에 밥을 먹고 생각정리를 시작했다.


난 이 회사에 평생 일할 생각이 없고 그러니 이 회사에서 빈틈없이 일을 잘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내가 남들보다 더 잦은 실수를 한다고 해서 내 전부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추정할 수도 없다. 그냥 남들보다 실수 한두 번 더하는 직원. 그래도 맡은 업무는 다 끝내는 직원. 이 정도가 좋겠다. 나 스스로를 완벽한 사원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일은 너무 잘해도 안 좋아. 칭찬 많이 받으면 뭐해. 업무도 덩달아 많이 받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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