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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노 May 25. 2020

무해한 비둘기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 주변에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많은 비둘기가 한 곳에 모여있다. 점심시간마다 공원을 왔다 갔다 하며 비둘기를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비둘기는 더운 여름에는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젤리처럼 축 늘어져있다. 겨울에는 몸이 탱탱해져 바싹 긴장한 채로 앉아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먹이를 줄 것 같은 과자봉지를 들고 있는 사람을 향해 모여들기도 한다.


한 번은 정말 놀라운 광경을 봤다. 중년 여성 두 명이 박스 위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데 그 바로 앞에 비둘기 두 마리가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나란히 있는 것이었다. 신기한 건 여성이 비둘기를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고 재롱을 부리듯이 날개만을 퍼덕거릴 뿐이었다. 신기해서 걸음을 늦추고 계속해서 보았다. 비둘기는 사람과 친해질 수 없는 야생동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쩐지 비둘기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친구한테 말했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비둘기의 공간을 헤친 것이지 비둘기가 우리의 공간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고.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로 행동하면서 비둘기를 더럽다고 하고 멸시한다고 말이다. 햄스터는 좋아하는데 쥐는 싫어하듯이 쓰레기봉투를 헤집거나 병균을 옮기는 등의 피해를 주는 동물을 유해하다고 지정해버리는 것이다. 비둘기는 그 자체로 징그러운 동물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이다. 


그 뒤로부턴 다시 비둘기를 보게 되었다. 비둘기가 더럽다는 기준은 오로지 사람에게 맞춰진다. 공원에 크게 걸려 있는 현수막에서 비둘기에게 밥을 줄 시에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글을 보았다. 그 현수막 아래에서 비둘기들은 자신이 결코 인간에게 해를 끼칠 존재가 아니라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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