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노 Nov 08. 2020

거대한 냉면집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학교 바로 근처에는 대전에서 모르면 간첩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순대국밥집이 있었다.


"저녁 뭐 먹지? 오문창 갈래?"
"콜!"

빨간색 촌스러운 폰트로 오문창 순대국밥이라고 적힌 간판이 오랜 세월을 짐작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국밥의 가격은 10년 전 가격인 듯 저렴했는데 내용물이 내장들로 주를 이뤄서 저렴한 것일 수도 있지만 순대를 먹더라도 내장들만을 골라서 먹는 나에겐 아주 최상의 국밥집이었다.


"이모. 밥은 따로 주세요!"

오문창에선 국에 밥이 말아져 나오는데 따로 달라고 했던 이유는 평일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수육국밥 사장님이 해주신 말씀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대전에서 수십  동안 장사를 하며 대전 요식업 사장님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는데 오문창을 좋아한다는  말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기 오문창가면 밥 따로 달라고 해. 따로 달라고 하면 밥을 더 많이 줘.'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턴 밥을 따로 달라고 했고 기분 탓인진 모르겠는데 정말 밥을 따로 달라고 해서 먹을 때 밥양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사장님 정보 개꿀."

지연은 국밥의 모퉁이를 들어 내장과 모든 국물을 수저로 긁어모으며 얘기했다.


식사를 하고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 용전동으로 향했다. 용전동으로 향하는 길에는 만수산 칡냉면이라 적힌  건물이 있었는데 사장님이 오문창의  얘기를 하다 말고  근처에 위치한 만수산 칡냉면 얘기를 해준  떠올랐다.


'그 큰 건물 알지? 거기 사장이 로또 1등에 당첨돼서 그 건물을 사서 냉면집을 차린 거야. 그런데 그 큰 평수로 4층까지가 다 냉면집이니 잘 될 리가 있나. 겨우겨우 버티다가 지금은 냉면집이 한층 밖에 없어.'


지연에게 수육국밥 사장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말해주니 대박이라면서 신기해했다. 그렇게 우린 로또 이야기로 주제가 흘렀는데 로또 1등 되면 뭘 하고 싶냐는 얘기를 안 한 사람은 지구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로또 1등이 되면 건물을 사서 건물주가 되어 세를 받으며 세계여행을 다닐 거다, 방전체를 드레스룸으로 꾸며 명품백으로 전시해둘 거다. 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을 행복한 상상을 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평소 예지몽을 자주 꾸는 나는 로또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에서 난 검은색 광택이 나는 고급 외제차에 탑승했다. 창을 내리고 달리는 풍경을 감상하는데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 빌딩이 줄줄이 있었고 그 고층빌딩엔 크게 숫자가 적혀있었다.

3이 지나갔고.. 6이 지나갔고.. 7이 지나갔다. 그다음 숫자가 나오려는 순간 꿈에서 깼다. 까먹을세라 급하게 휴대폰을 찾아 메모장에 3,6,7을 적었지만 중간에 깬 나 자신을 책망하며 꿈이 이어지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바로 로또 판매점에 달려가 3,6,7을 체크하고 나머지는 찍거나 다른 칸에는 자동으로 채워 놓았다.


"나 그때 3,6,7만 맞고 다 틀렸었잖아. 하.. 그때 왜 잠에서 깨 가지고..."

"헐 대박. 진짜 아깝다.. 그래도 넌 가능성이 있네. 다시 꾸려고 노력해봐."

"그게 노력해서 될 일이면 난 그림을 그리지 않고 계룡산에 올라가 평생을 수련이나 하면서 꿈을 꾸는데 집중하겠어."


멀리서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보였던 만수산 칡냉면이 로또 얘기로 어느새 문 앞까지 다다라 지나치고 있었다.

"근데 로또 1등이 됐는데 왜 냉면집을 했을까? 나 같으면 건물세나 받으면서 평생 놀고먹을 텐데."

"그래? 난 로또 1등 되면 크게 카페 차리고 싶은데. 놀기만 하면 심심하잖아.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면서 직원들한테 다 시키면 되지."

"그런가. 저 냉면집 사장님도 그랬을까? 난 일하기 싫어서 돈 많이 벌고 싶은데 돈이 많아져도 왜 일을 벌리나 하고 생각했어."


어느덧 우리는 영화관 3층을 향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었다.

"오늘 일요일이지? 하..  앎과 삶 과제 다했냐? 삶을 알기 전에 암 걸릴 것 같아."

"헐 맞다.. 로또 1등 돼서 학교 안 가고 싶다. 여기 1층에 로또 판매점 있는데 한 장 사러 갈래? 일주일의 희망을 품어보자."

최근에 꾼 꿈이라곤 유노윤호와 시아준수가 나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던 개꿈 밖에 꾼 적이 없어서 로또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로또라는 헛꿈을 얘기하면서 3관에 입장했다.




현재 만수산 칡냉면의 업체 정보가 사라졌고 블로그의 마지막 후기는 올해 5월까지였다. 4층을 모두 거대한 냉면집으로 운영을 했다가 몇 년 뒤에는 2층짜리로 그리고 몇 년 뒤에는 2층만 운영,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로또 1등이 되면 뭐할 거냐고 실없는 얘기를 하는 우리도 진짜 로또 1등 당첨이 됐던 사장님도 한때의 짧은 꿈을 꾸었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이 상대평가였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