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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노 Apr 27. 2020

첫 직장

삶이 탄탄대로 일 것만 같았던 철없던 나의 시작

나는 미대를 졸업했다. 당시 졸전 준비로 인해 야작을 하며 고통스럽던 나에겐 졸업이 꿈이었다. 다들 졸업하면 뭐 먹고 사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난 생각보다 태평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미술은 가망 없다. 돈 못 버는 가난한 직업이 미술 계통이다.' 라며 친구들이 울상을 지으며 괜히 미대에 왔다고 과제만 많고 꿈과 희망이 없다며 울먹일 때 내가 항상 하던 말이 있었다.


"그냥 지금 맡은 거나 열심히 해. 취업은 어떻게든 돼."


사실 그 당시에 나는 과제나 해야 할 일도 열심히 안 하면서 신세한탄만 하는 친구들이 조금 짜증 났다. 지금 하는 일에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정말 안일한 생각이었지만.. 물론 맡은 일에 열심히 하다 보면 결과는 좋을 수 있겠지만 내가 기대했던 만큼, 내가 한만큼 따라오지 않는 것이 사회였다.


대학교 4학년 때 나의 꿈은 내가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거였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면서 소소하게 블로그 마켓을 하며 빼빼로데이 때 빼빼로 선물포장을 이쁘게 해서 팔기도 하고 나름 소소한 수입을 벌었다. 사업자도 냈고 귀걸이도 만들어서 플리마켓을 열어 판매를 하기도 했다. 얼른 졸업을 해서 내가 이쁘게 만든 것들을 팔고 싶었고, 때돈을 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을 하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물건 팔리는 건 내 용돈벌이 수준도 안되었고 도무지 생계유지를 할 수 없었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은 다음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식당에서 주 6일 하루에 12시간을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돈 관리도 못했던 나는 모이는 돈도 없었다. 월세, 공과금, 생활비, 여가비 그렇게 다 쓰고 나면 남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까. 난 조금 모인 돈이라도 얼른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청년사업자대출을 받으려 돌아다녔는데, 세상에나 이것도 조건이 안된다는 것이다. 내 삶은 점점 피폐 해져갔다. 대전에 의지할 친구도 없었던 나는 장거리 연애 중이던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 운 적도 많았고, 나와 반대로 남자 친구는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연락도 하루에 한두 통 화도 못할 정도였다. 플리마켓도 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힘든 소득이었고, 대학생 때의 나의 안일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 조금 열심히만 하면 무엇이든 될 거라는 상상. 왜 나는 대학생 때 그 흔한 자격증 조차 취득을 하지 않고 내 삶이 탄탄대로라고만 생각했을까. 참 어리석고 한심한 나의 대학생 시절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너무 힘든 마음에 친구와 함께 대전에 유명하다던 점집을 찾아갔다. 반신반의로 찾아간 그곳에선 정말 소름 돋게 잘 맞추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일부분을 바꾸어준 건 부모님도, 스승도 아닌 점쟁이였다. 


"조울증도 있고 우울증도 있네."

"맞아요..."

"넌 재능이 참 좋다~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하네."

"그래서 제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쪽을 하고 있는데 하면 잘 될까요?"

"아니. 하지 마."

"네? 왜요?"

"넌 손으로 하는 건 참~ 잘해. 재능도 있고. 그런데 이걸로 니 밥벌이로 삼으면 안 돼. 정 하고 싶으면 지금부터 많이 배우고 28살 이후부터 해."

"그럼 전 뭘 해야 할까요..?"

"취업해. 취업해서 돈을 벌면서 뭐든지 많이 배워."

"아..."


그래도 고집을 꺽지 않았다. 속으로는 '다음 주에 플리마켓도 있는데 플리마켓 열심히 해봐야지' 하고 머릿속에 생각을 하는 순간


"근데, 내가 볼 때 넌 참 고집도 세고 남 말 안 들어. 어차피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넌 하겠구먼."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내 맘을 알고... 역시 소문난 점집은 다르구먼. 정말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진지도 모른 채 너무 안일하고 남 말은 안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자본이 있어야 시작도 할 텐데 아무런 모아둔 돈도 없었고, 잘 짜여진 계획도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모습들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 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막상 취업을 하려고 하니 어디에 지원해야 할지도 몰랐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블로그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작업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집에서는 버스로 50분 정도가 걸리는 먼 곳이었지만 자기소개서도 필요 없었고 일단 면접이나 보자는 생각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만나던 남자 친구에게 블로그에 대한 전문지식을 간단하게나마 배우게 되어서 면접을 보는 데에는 수월했다. 그런데 그곳은 회사라기보다는 가정집 같은 곳이었다. 매우 허름했던 곳. 하지만 취업이 된다면 정말 무릎 꿇고 절을 할 수 있을 만큼 간절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오는데 하루 만에 합격 전화가 왔다. 세상에나 내가 취업했다니. 나도 사회인이 되었다! 물론 회사라기보다 가정집 같은 느낌이 강했고, 사대보험도 당장은 들어줄 수가 없는 곳이었지만 아르바이트라고 말하지 않고 회사를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너무나도 기뻤다! 나의 첫 직장..! 나의 첫 직장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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