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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노 Apr 26. 2020

주인 찾아온 햄스터

사루비아 이야기

어렸을 적에 나는 햄스터를 많이 키웠었다. 한 번에 여러 마리를 키우기보다는 몇 년에 걸쳐서 수많은 햄스터를 키웠었다. 나름 내가 키우던 햄스터는 오래 살았는데 오래 살아봤자 햄스터의 수명은 최대 3년이었다. 한번 키우게 되면 2-3년은 살았고 빨리 죽은 햄스터는 2달도 안돼서 죽은 아이도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땐 문방구에서 햄스터 뽑기라는 게 있었다. 생명을 물건처럼 대한다는 동물학대 문제로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당시만 해도 학교 앞 문방구에는 금붕어, 거북이, 햄스터, 소라게, 장수풍뎅이 등등 수많은 동물들이 뽑기로 나열해 있었다. 뽑기는 한 번에 100원. 정말 운 좋으면 한두 번 만에 뽑고 일진이 안 좋은 날은 20번을 해도 뽑히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동물들은 문방구에서 100원 뽑기로 물건을 뽑아가듯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간편한 동물 뽑기로 전략해 있었다. 그렇게 뽑아온 햄스터의 이름은 '사루비아'였다. 사루비아는 그 당시에 과자 이름이었는데 그냥 과자의 이름이 고급스럽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었다.


키운 지 얼마 안돼서 사루비아는 핸들링도 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로보로브스키 라는 종이 었는데 갈색 털에 일반 햄스터보다는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고, 재빠르고 예민하고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날 잘 따랐다. 손을 내밀면 손을 타고 올라와 잠을 자기도 하고 순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루비아랑 놀다가 잠깐 바닥에 둔 사이 재빠르게 사루비아가 도망쳤다. 온 곳을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햄스터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햄스터는 가출을 정말 잘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찾다가 보이지 않아서 다음날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을 자고 그다음 날이 되었는데, 햄스터 집에 사루비아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사루비아.. 어떻게 집에 들어왔어..?"


그런데 사루비아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채 있었다. 소파에 앉아계시던 아빠가 화가 난 채로 말을 했다.


"당장 갔다 버려라!"


알고 보니 전날 아빠가 거실에서 불을 다 끈 채로 티비를 보고 있는데 그때 소파 사이로 사루비아가 나타난 것이다. 아빠는 사루비아를 쥐로 착각하고 책으로 내리쳤다. 그래서 사루비아가 한쪽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렸던 것이다. 밤중에 놀라서 너무 화가 난 아빠는 내일 당장 그 햄스터 버리고 오라며 화를 내셨고, 당시 아빠를 너무 무서워해서 거역할 수 없었던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음날 오빠와 나는 초등학교에 가기 전 사루비아를 데리고 놀이터 옆 풀숲에 놓아주었다. 풀숲에 놓아주어도 사루비아는 도망가지 않고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그렇게 하염없이 우는 나를 달래주면서 오빠도 작은 눈물을 훔쳤다.


그로부터 반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등교를 했는데 반에 아이들이 시끄럽게 모여 있는 것이다. 뭐지 하고 갔는데 우리 반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의 머리 위에 사루비아가 있는 것이다.


"사.. 사루비아..!"


분명 우리 사루비아 였다. 전보다는 말랐지만 몸의 곳곳에는 흙이 묻어있었고, 사람 손길도 안 피하는 아이.. 우리 사루비아였다. 사루비아가 날 보러 학교까지 찾아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친구들은 다들 왜 우냐고 그랬고 난 계속 울면서 우리 사루비아라고 내 햄스터라고 했다.


"사루비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 있던 도자기에 사루비아를 두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자마자 사루비아를 데리고 집에 가서 키우게 되었고, 사루비아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잘 키우다가 어느 날부터 사루비아는 이상하게 한 곳만 뱅뱅 맴돌았다. 그것도 엄청 빠르게. 정신병이 생겼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뱅뱅 돌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된 건지 아직도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환경이 바뀐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의 나. 그리고 어렸을 때의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이 작은 생명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햄스터를 가족같이 여겼다면 아빠의 으름장에 난 풀숲에 풀어주었을까? 그리고 아빠 또한 햄스터를 하찮은 동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강아지나 고양이였어도 그렇게 했을 까? 어린 나는 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힘도 없었고 생각도 없었다. 그저 귀여운 동물. 만지고 싶은 부드러운 동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사루비아가 날 학교에 찾아온 사건은 아직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물론 우연일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인연이고 운명이라 생각이 든다.


당시에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종종 햄스터가 보였다고 했다. 시소위에 앉아있기도 하고 사루비아를 본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사루비아는 어쩌면 내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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