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흐려지고, 지워지고, 조각이 납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향기와 스쳐 지나간 풍경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조금씩 쪼개져 망각이라는 다락방으로 들어가 쌓입니다. 그것도 아주 뒤죽박죽으로요.
여행의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경치도 혀를 녹이던 요리도, 멋진 음악도 점차 어둠 속으로 들어가 아득해집니다. 그러다 연결이 될만한 기억의 요소를 일상에서 마주치는 순간이나 다시 지난 여행이 그리워 자신의 머릿속 기억 터널을 일부러 통과해야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여행은 삶에 있어 작은 판타지입니다. 하루 하루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잠시 멈추고 꿈꾸던 비현실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늦잠을 자고 서두르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행인들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여행 기간에는 일상의 시간이 멈추게 됩니다. 또 평소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어쩌면 여행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판타지인 이유가 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사랑은 어떨까요? 어떻게 보면 그 모습은 어딘가 여행과 비슷하지 않나요? 여행에 대한 희망을 꿈꾸며 사는 것 같이 우리는 늘 아름답고 숨이 멎을 것 같은 사랑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사랑을 하면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연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열정적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죠. 하지만 가슴 절절한 사랑이라는 판타지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막이 내립니다. 이 역시 제한된 시간이 있어 더욱 가슴 저리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끝이 난 여행, 사랑에 대한 판타지는 그리움으로 바뀌어서 저장됩니다. 파리 세느강에서 보낸 한여름밤을 추억하고, 가슴 아팠던 이십대 초반의 첫사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저는 기억의 터널이 모두 닫치기 전에 그 순간을 정지해 두고 싶어 ‘기억’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상적인 부분만 선명하게 떠오르고 많은 부분은 여백으로 채워지고 있지만 그 여백 안에는 애틋한 사람과 사랑, 그리움, 외로움, 행복, 슬픔 등이 가득합니다.
그림 작가는 그림을 팔아야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에너지가 생깁니다. 경제적인 면을 넘어서 예술 창작품이 살아움직이는 것은 창작자의 손을 벗어난 다음입니다. 작품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입니다.
제 그림을 통해 여러분의 기억에 저장되어 점차 사라져가는 기억과 여행, 사랑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포스팅에 첨부된 작품 구입 문의---bjh4372@gmail.com/ bjh437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