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들어선 톨레도 신시가지의 모습은 특징이 없었다. 우리나라 일산이나 분당의 모습과 흡사했다. 잘 정비된 도로를 통과해 구시가지 방향으로 이동했다. 길이 점차 좁아지고 도로 바닥이 울퉁불퉁한 돌로 바뀌기 시작하면 구시가지에 들어서는 것이다. 나는 유럽을 여행하며 이렇게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순간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약한 호텔은 알카사르 궁전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짐은 모두 호텔에 올려두고 카메라와 스케치북만 들고 다시 차를 몰고 나왔다. 톨레도 구시가지 전경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아주 오래전 유럽여행을 담은 책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바로 그 장면을 실제로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도시 외곽을 싸고 있는 성벽과 강을 끼고 크게 돌아 ‘파라도르(스페인의 옛 궁전 등을 호텔로 운영하는 곳)’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언뜻언뜻 톨레도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언덕길이라 구불구불 만들어진 도로는 감격의 순간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고 조금씩 공개했다. 마지막 굽은 길을 돌아 전경이 모두 보이는 순간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 여행과 그림은 사진 한 장이 시작이었고, 바로 그 사진 속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구시가지 전체를 끼고도는 타호 강과 요새처럼 만들어진 외성, 왼쪽 중심에 있는 대성당과 오른쪽 알카사르성은 완벽한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파란 하늘.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판타지의 순간에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톨레도는 천연의 요새이자 스페인 정중앙에 위치한 이유로 아주 옛날부터 스페인의 중심지였고 늘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특히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 전쟁 초반에는 공화국 정부군이 유리했다. 하지만 톨레도의 수비대장이었던 프랑코 군의 모스 까르도 대령은 공화국 정부군에게 포위당하고도 알카사르 안에서 72일을 버텨냈다. 알카사르는 로마시대에 처음 지어진 후 증축되고 개축된 견고한 성이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정부군은 알카사르의 지하에 10톤이 넘는 다이너마이트를 매설해 폭발시켰지만 알카사르의 지반은 무너지지 않았고, 어마어마한 포를 쏘며 공격했지만 6피트(1피트=약 30.48cm) 두께의 알카사르 벽은 파괴되지 않았다. 모스까르도는 군수물자 공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병용 말까지 식용으로 쓰고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았다.
루이스 : 아버지!
모스 까르도 : 그래, 아들아, 몸은 어떠니? 괜찮니?
루이스 : 전 괜찮아요. 그런데 만약 아버지께서 항복하지 않으면 저를 죽이겠대요.
모스 까르도 : 아들아, 너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라! 그리고 ‘스페인 만세’를 힘차게 외치며 애국자로 세상을 떠나라!
루이스 : 아버지, 저의 힘찬 키스를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보낼게요.
모스 까르도 : 아들아, 나도 이별의 마지막 키스를 너에게 보낸다.
이때 정부군은 당시 16살이었던 모스 까르도 대령의 아들 루이스를 인질로 잡고, 10분 내에 항복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당시 모스 까르도 대령과 아들의 전화통화 내용은 군사박물관이 된 알카사르에 있는 녹음기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아들에게 죽음을 명하는 아버지와 망설임 없이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애틋하고 슬펐다. 그것이 아들과 아버지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대화였다. 루이스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고, 당당하게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루이스의 죽음으로 이를 악문 모스까르도는 끝까지 톨레도를 지켜내게 된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놀이공원에 있는 꼬마열차처럼 생긴 열차가 관광객을 가득 싣고 올라왔다. 시끌벅적한 여행자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 셔터 소리 너머로 다시 모스까르도와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톨레도에서는 어디를 가든 엘 그레코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엘 그레코의 집, 산타크루스 미술관, 톨레도 대성당, 산토 토메 성당,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수도원, 톨레도 타베라 병원, 산호세 성당, 산 후안 수도원 등 모든 곳을 둘러보려면 아예 엘 그레코만을 주제로 일정을 잡아야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이 많은 도시가 톨레도다. 마치 도시 전체가 엘 그레코의 미술관이라도 해도 될 정도다.
엘 그레코의 작품 속 인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이지만 몽환적인 인물들의 눈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의 그림 속 인물이나 풍경은 현대의 추상화에서처럼 기묘하게 일그러지고 뒤틀리고 변형되어 있어 그가 난시였거나 시각장애를 앓았을 거라는 학설도 있다. 이 천재화가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피카소가 존경한 벨라스케스는 엘 그레코를 존경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피카소는 엘 그레코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에서 영감을 받아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렸다고 말했다.
그는 죽어서도 톨레도에 남아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수도원에 있는 가족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아들 호르헤 마누엘이 수녀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가족묘지는 산 토르콰토 성당으로 옮겨졌고, 그 성당이 파괴되면서 엘 그레코의 무덤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물리적인 그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의 그림과 그가 걸었던 거리, 그가 머물렀던 성당, 그가 생활한 톨레도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산타크루즈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올려다본 하늘엔 하얀 반달이 걸려 있었다. 가로등이 희미한 골목 끝으로 걸어가면 그가 살았던 중세의 톨레도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도시의 가로등 빛이 더 진해지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호텔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난 다시 걸음을 돌려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꺼냈다. 이 순간 톨레도의 전경이 보이는 언덕은 하늘의 별들과 지상의 별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도시를 밝히는 가로등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앞에서 나는 달이 한참 기울 때까지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스케치를 했다.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을 보내는 마지막 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