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울음보를 터뜨린 알바이신 언덕

by 배종훈

그라나다에 들어서자 맑던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숙소에 도착할 무렵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서가 아니라 스페인의 여느 도시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 그라나다를 감싸고 있었다. 화려함과 다양함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빛나는 햇살이 선물인 코스타 델 솔을 비롯한 지중해를 연한 아름다운 도시들과 달리 그라나다는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 서러움이 도시 곳곳에 스며 비 내리는 날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스멀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8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화려했던 이슬람 도시는 순식간에 처참하게 짓밟히고 버려졌다. 하지만 모스크를 부수고 성당을 지었던 기독교인들도 차마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파괴를 선택하지 못했다. 다만 정복자들은 알람브라 궁전을 폐허로 만들고 승리의 역사를 그라나다의 곳곳에 새겼다. 그라나다의 길바닥 곳곳에는 그라나다(석류)가 선명하게 새겨져 기독교의 승리와 이슬람교의 패배를 확인시키고 있다.

DSC01969.JPG


그라나다 정복의 영광은 스페인을 세계로 뻗어나가게 만들었고, 스페인 통일은 그라나다 정복으로 완성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 준비하고 더 오랜 시간 기다렸던 통일이었다. 1469년 바야돌리드에 있는 후데 비베로 궁전에서는 18세의 까스띠야 공주 이사벨과 17세의 아라곤 왕자 페르난도의 비밀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사벨은 이복오빠이며 까스띠야의 왕이었던 엔리께 4세의 결혼 반대에 왕궁을 탈출해 군대에 쫓기며 식장에 도착하게 된다. 페르난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상인으로 변장해 밤에만 이동하면서 식장에 도착했다.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다. 엔리께 4세는 이사벨이 강대국인 포르투갈로 시집가기를 바랐고 아라곤의 귀족들은 아라곤이 까스띠야에 흡수될까 봐 두려워 페르난도의 결혼을 반대했다. 이웃나라 프랑스의 루이 11세는 까스띠야와 아라곤의 결합이 프랑스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못마땅했다. 반대하는 수많은 이들을 피해 몰래 하는 결혼식이었고 돈이 없어 결혼식 비용을 빌려야 했으며, 근친혼이라 교황의 허락을 받아야 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5년 뒤, 앤 리께 4세가 죽자 이사벨은 까스띠야의 여왕이 되고, 5년 뒤, 페르난도 또한 아라곤 올 물려받아 왕위에 올랐다. 마침내 두 사람은 까스띠야와 아라곤의 힘을 합쳐 오랫동안 미뤄온 국토회복운동을 시작한다. 비밀 결혼을 한 뒤 10년 만이었다. 그리고 13년 후 마침내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스페인을 통일하게 된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두 사람의 위업을 기려 가톨릭 부부 왕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죽을 때까지 그라나다 정복을 자랑스러워했고 죽어서도 그라나다에 묻히길 희망하여 스페인 왕들이 묻히는 엘 에스 코리 알 대신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에 묻혔다. 그라나다에 대한 엄청난 사랑이었다.


예약한 그라나다의 아파트는 1층에 중정을 갖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었다. 낡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그런데 리셉션이 함께 운영하는 호텔에 있었는데 아파트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자동차를 호텔 주차장에 보관하고 우산도 없이 다시 돌아오는 길은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기분을 쳐지게 만들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유럽의 도시에선 왠지 비를 맞아도 괜찮아, 여행이 아니면 언제 그래 보겠어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그라나다의 비는 우울하고 쓸쓸했다. 한 번 상처를 입으면 절대 완전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상처 입은 도시도 여전히 흉터로 가득한 모습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59.jpg


숙소로 돌아와 우산을 준비해 다시 나왔다. 오늘은 알바이신을 가볍게 돌아보고 싶었다.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곳이지만. 알바이신 지구는 그라나다가 함락될 당시 가장 거세게 저항했던 곳이다. 이슬람식으로 지어진 건물의 흰 벽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비바람에 씻기고, 시간에 흐려진 검붉은 핏자국을 가리기 위해 사람들은 그곳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했다. 그래서 알바이신의 골목을 걷다 보면 하얀 벽 아래쪽에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전쟁에 패한 후 추방을 당했지만 아프리카로 돌아갈 돈도 없었던 아랍인들은 폐허로 변한 알바이신으로 깊이 숨어들어갔다. 알바이신에서는 알람브라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들이 믿었던 신이 철저히 짓밟힌 곳에서 살아서도 죽은 것처럼 살아야만 했다. 무너진 왕궁을 맥없이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은 눈물이 나이라 매일을 피를 흘리며 살았을 것이다.


알바이신에서 보이는 또 다른 쪽 언덕에는 집시들의 거주지인 사크로몬테가 있다. 집시들은 언덕의 경사면에 구멍 올 파고 돌어가 살았다고 한다. 집시들은 아랍인들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워 정착을 인정받았지만 승인받았지만 이웃이었던 알바이신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알바이신에는 어린을 함께 보낸 친구도 있었을 테고, 자신의 플라멩코를 거리에서 보고 도움을 준 누군가도 있었을 테고, 가난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이웃도 있었고, 어쩌면 애틋하게 사랑을 나눈 연인이 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알바이신을 피로 물들인 대가로 그곳에 살게 되어 뿌듯하고 행복했을까? 구속받지 않고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자유를 꿈꾸는 그들에게 이웃의 피를 흘려 얻은 것이 행복과 자유를 선물했을까? 이제는 그 상처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알바이신의 골목길을 누비다 알람브라가 건너다 보이는 언덕에 서서 한참 연민에 빠졌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알람브라 궁전 뒤편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 구름 사이로 붉게 보였다. 이곳에 앉은 수많은 여행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순간을 보내고 있을까? 닿지 않고 풀리지 않은 타인의 아픔이 가슴에 가득 차올랐다.

스페인-그라나다-알함브라궁전1.jpg

아랍어로 ‘알 함라’는 ‘빨강’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많은 종류의 꽃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은 계절마다 번갈아 옷을 갈아입고, 섬세한 장식들은 햇빛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겠지만 겨울의 알람브라는 금빛과 진한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지도를 들고 다니는데도 길을 잃을 정도로 넓은 궁전은 반나절을 돌아다녀도 못 본 곳이 많았다. 종유석을 깎아 장식한 벽은 몇 천 년의 세월을 머금은 석회동굴의 신비로움을 풍겼고,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을 녹여 흘려보낸다는 분수는 끊임없이 반짝였다. 높은 언덕에 세워져 어디서나 창 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건너편에서 계속해서 눈을 붙잡는 알바이신은 알람브라 궁전을 걷는 내 걸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생을 바쳐야 했던 이름 없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이 사람들이 생활하지 않는 궁전 등의 건축물 관람을 그리 즐기지도 않지만 알람브라에서의 시간은 더욱 그랬다.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암람 브라 궁전 관람은 적당히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알바이신이 보이는 난간에 앉아 스케치북을 꺼냈다.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 작은 그림을 하나 그리는 것뿐이지만, 내가 전할 수 있는 진심의 위로를 담았다.


하루를 모두 이곳에서 보낼 예정이었지만 서둘러 궁전을 빠져나와 다시 알바이신 골목으로 방향을 잡았다. 거리에서 기념품을 파는 집시들을 지나 조금 깊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알바이신은 혼자 다니지 말라는 여행안내책자의 경고가 잠시 머리를 스쳐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빵을 안고 집으로 들어가며 카메라로 자신의 집 벽을 찍고 있는 내게 살짝 웃으며 눈인사를 하는 사람, 골목에서 축구를 하다가 손을 흔드는 아이들,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노부부의 평화로운 미소가 가득할 뿐이었다.

DSC01531.JPG


이전 05화연인을 보내는 마지막 밤처럼 빛나는 톨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