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로 인해 낮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 나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이 길이 오로지 내 발걸음만으로 가득 차 있다. 어두웠지만 두렵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좁은 골목길이 끝나는 순간 탁 트인 광장이 나타났는데 그곳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로 걸어가니 광장의 안개는 걷히고 눈 앞에 빛으로 둘러싸인 산티아고 대성당 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에 서둘러 출발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입성했다. 멀리 성당이 보이고 길에는 마지막 걸음을 걷고 있는 감격에 찬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을 걷지 않고 들어가기로 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으로 해두었는지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곳이 성당 앞 광장이었다. 감격에 찬 순례자들로 가득한 광장을 자동차로 들어가 황급히 그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자니 너무나 민망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꿈에도 본 그 길과 광장, 성당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예수의 부활 이후, 야고보는 복음을 전파하고자 현재 이스라엘 지역에서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지던 스페인 지역까지 걸었다. 그리고 기원후 44년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하게 된다. 이때 야고보의 머리는 현재 예루살렘의 성 야고보 성당에 안장됐고 당시 그의 몸은 제자들이 거둬 적당한 장소를 찾아 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정처 없이 떠돌던 배는 현재의 갈리시아의 한 항구에 도착하게 되고 야고보의 시신은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한 언덕에 묻히게 된다. 그 뒤 몇백 년이 흐르고 813년 어느 날 은둔자 펠라 요가 하늘에서 상서로운 별빛이 빛나는 것을 알아채고 별빛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는데 그곳에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 당시 아스투리아스 왕이던 알폰소 2세는 그곳에 최초의 예배당을 짓도록 한다. 그때가 834년이었는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지명도 그때 지어졌다. 여기서 ‘콤포’는 라틴어 ‘콤푸스(들판)’, 스텔라는 라틴어 ‘텔래(별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그 후 알폰소 3세는 899년에 새로운 성당을 세웠으나 997년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모두 파괴되었다. 현재는 세 번째 지어진 것으로 1003년에서 1075년에 지어졌다. 성당 안에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기독교 성지로서 많은 순례자를 맞이하게 된 것은 과거 이슬람과 기독교가 싸우던 때로 올라간다. 844년 발발한 클라 비 전투에서 스페인군 앞에 야고보가 나타나 이슬람군을 무찌른 기적이 일어난다. 이 기적에 관한 소문은 순식간에 스페인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성심이 크게 자리 잡았다. 이를 계기로 산티아고는 새로운 순례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순례지로 향하는 유럽의 길은 수백 개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이탈리아의 로마와 함께 세계 3대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와 <연금술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잊혀가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낸 것이다. 코엘료가 그 길을 걷던 당시 1년에 400명이 걸었다면 책이 인기를 얻은 뒤에는 하루 400명, 이제는 수천 명이 이 길 위에 있다.
주차를 마치고 다시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을 지나온 곳인데도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의 길은 세계인들로 하여금 몇 백 킬로미터에서 몇 천 킬로미터까지 걸어오게 하는 힘이 있다. 비행기와 열차, 자동차와 버스가 버젓이 다니는 21세기에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가다니! 어쩌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 이유를 찾고자 걷고 있다니 참 대단한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자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평생 질문하고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곳을 찾은 우리도 그렇고 말이다.
대성당 안은 순례자들과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잠시 앉아 있다가 너무 정신이 없어 다시 광장이 있는 계단으로 나와 순례자들처럼 자리에 앉았다. 순례자들은 계속해서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새하얀 백인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발갛게 익은 모습이었다. 걸음걸이 역시 한결같이 지쳐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착한 감격에 겨운 표정들은 당장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가 주변의 순례자와 눈이 마주치기면 서로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한다. 우리는 순례길을 모두 걷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만은 그들과 같은 마음과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웃고 눈물지었다.
순례자들은 지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려는 듯 쉽사리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우리도 아쉬운 마음에 계단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계단에 흩어 앉아 순례자처럼 찍은 이상한 단체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나서야 점심식사를 하러 몸을 일으켰다.
순례자들은 이제 가슴속에 켜진 자신만의 빛을 소중히 간직한 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고 가끔은 이 길을 그리워하면서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빛을 밝히며 살아갈 것이다.
별들의 들판이란 뜻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곳을 걷고 이곳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의 마음이 별처럼 세상의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의 별도 작으나마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대성당의 그 광장과 계단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