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을 오기 전까지는 나에게 여행과 해바라기는 그림의 소재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만난 해바라기 언덕은 내 그림과 생각을 크게 바꾸게 하는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유럽여행을 동경하고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 있다는 끝없는 해바라기 들판과 900km를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 했던 동생은 자주 그곳의 이야기를 했었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쓴 책을 읽고, 아름다운 들판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조가비를 등에 지고 걷는 그 길이 처음에는 굳이 왜 거기까지 가서 고생을 해가며 걸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만들었지만 점차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평선을 바라보며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 그 길이 내 가슴속에도 점점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참 가까운 곳에 있었다. 6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동생을 떠올리면 가슴이 막힌다. 가족을 예기치 못한 일로 하늘로 보내는 것은 손이 닿지 않는 등허리 어디쯤에 큰 칼이 꽂히는 일이다. 그것은 영원히 아프고 피가 흐르는 상처가 된다. 매일매일 밤이 되면 가슴이 답답해 쉽게 잠들지 못했고,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다가 눈물이 복받쳐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거나 차를 갓길에 세워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본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해바라기 들판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곳을 동경한 동생을 위해서인지 가슴이 막혀버린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스페인으로 떠나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가지 않고는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오늘 걷기로 한 거리는 약 20km. 도보로 4-5시간 정도의 거리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라는 도시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푸엔테 라 레이나는 스페인어로 '여왕의 다리‘라는 뜻이었다. 여름인데도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른 하늘, 시원한 공기, 땀이 흐르지 않는 건조함이 모두 좋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길에는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숲 속에 홀로 있는데도 걱정은 없었고, 앞으로 뒤로 아무도 없는 그 숲길은 두려움이 아닌 묘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공간이었다.
자전거를 탄 순례자가 속도를 늦추며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내 곁을 지나쳤다. 부엔 까미노는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의 걸음을 응원하는 일상적인 인사였지만 나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외국인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참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이전에도 그리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사고로 내 마음은 더욱더 차가워져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차가운 마음을 낯선 누구에게 따뜻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문제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을 왜 스스로 금기하고 있을까? 단단히 닫힌 문 앞에 선 기분으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 멀리 앞서 나가던 자전거 순례자가 자전거를 세우고 내게 손을 흔들며 다시 인사했다. ‘부엔 까미노’.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어 나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부엔 까미노’라고 했다. 중얼거리듯 말해 소리를 듣지는 못했을 테지만 그는 웃으며 다시 자전거를 움직였다. 얼떨결에 한 인사가 이상하게 기분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 순례자의 웃음이 내 차가운 마음 어딘가를 조금 녹인 것 같았다. 동생이 늘 말하던 좋은 사람들, 알 수 없지만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던 까미노 데 산티아고.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특징 없는 산길을 한참 걷다가 길을 안내하는 노란 조가비나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불현듯 느꼈다. 그것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순례길의 표식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됐지만 인가도 보이고 농장도 있는 길이라 걷다 보면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또 한참을 걸어 숲길이 끝나는 자리에 도착했다. 숲이 끝나면 그늘이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내며 걸음을 계속했는데 숲길의 끝에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턱 막혔다.
그곳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들판이 있었다. 스페인의 순례길에 올라서도 큰 감흥이 없던 내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 순간이다. 동생이 떠나고 꿈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동생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소리 내어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 들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아주 잠깐 제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다시 걸어가는 낯선 순례자로 인해 울음을 그쳤으니까. 내가 울음을 그치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고 계속 걸어갔다. 이제 일어나 이 들판의 해바라기를 보고, 앞으로 걸어 나가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동생이 이 순간 하늘에서 내가 보고 있는 해바라기 길을 함께 보고, 그토록 기다린 풍경에서 만난 벅찬 감정을 똑같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해바라기가 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돌아가 이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바라기가 가득한 그림은 여행을 마친 다음에도 언제나 나를 이 순간 앞에 다시 데려다줄 것이고 첫 그림은 천국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고 싶었다.
여행을 마치고 조금씩 그려진 해바라기가 있는 작품들은 우선 그림을 그리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또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편안함, 충만함을 함께해 주었다. 어쩌면 여행이 가슴의 상처를 치료하진 못해도 덜 아프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내 해바라기를 가득 담은 그림이 상처 받은 다른 이들에게 작은 연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