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갈등은 아무것도 얻지 못해!

by 배종훈

유럽 캠핑장의 아침은 버터를 듬뿍 발라 굽는 빵과 구수한 커피 향으로 시작된다. 텐트 안에서 늦잠을 자려고 해도 그 향 때문에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텐트 지퍼를 내려보니 영화에서나 볼 만한 장면이 펼쳐졌다. 바게트 빵이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끌어안은 아들이 자전거 뒷자리에 앉고, 금발의 멋진 아빠가 씩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세 번째 날, 유럽에 온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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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동차로 팜플로나에서 레온(Leon)으로 이동하고 레온 대성당을 기점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순례길 전체를 걷기 위한 여행은 아니었기에 3일을 걷고 4일째는 자동차로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순례길 표지판이 가까이 보이는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늘 걷기로 한 팀과 헤어졌다. 오늘은 내가 자동차 운전을 맡은 날이었다. 한낮의 태양으로 그림자가 짧았다. 레온까지는 온통 단조로운 풍경에 그늘까지 없어 오늘 걷기로 한 팀이 매우 고생할 것 같았다.


나는 자동차를 운전해 레온 외곽에 있는 캠핑장을 내비게이션에서 찾아 출발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텐트도 치고 식사 준비도 하면서 일행이 올 때까지 여유 있게 쉬고 싶었다. 하지만 좀 더 편하고 좋은 곳에서 쉬고 싶다는 욕심이 문제였다.


처음 찾아간 캠핑장은 작은 수영장과 바가 있는 규모가 무척 작은 곳이었다. 어제 푸엔테 라 레이나의 캠핑장에 비하면 뭔가 부족한 것이 많아 보였다. 어차피 우리가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 화장실만 잘 갖추어지면 충분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왔음에도 자꾸 욕심이 생겼다. 거리는 조금 멀지만 내비게이션을 보니 근처에 다른 캠핑장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돌려 다음 캠핑장으로 갔다. 하지만 역시 욕심은 벌을 받는 모양이었다. 규모가 큰 캠핑장이었지만 오래전에 폐장된 것 같았다. 굳게 닫힌 철문과 바리케이드가 입구를 막고 있었다. 결국 다시 차를 돌려 처음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텐트 두 개를 치고 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텐트에 누워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겠다는 꿈은 두 번째 캠핑장을 찾으러 나갈 때 이미 깨졌다. 리셉션을 겸하는 카페에 가서 맥주를 한 잔 시켜 마시는 중에 오늘의 트레킹팀이 캠핑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캠핑장을 나와 레온 대성당이 있는 시내로 나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중세시대 마차와 사람들이 다녔을 골목을 지나고 지나 골목 끝으로 레온 대성당이 보였다. 옛사람들도 이 길을 걸으며 또는 약속의 장소로 항상 성당을 기준으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시간이 가득 쌓인 골목을 참 좋아한다. 빨리 걷고 싶어도 눈이 여기저기 따라 가느라 금세 걸음 속도가 떨어졌다. 이런 골목길로 들어서면 다음 걸음으로 옮기는 걸 잊지 않아야 앞으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니 골목길 사랑이 유별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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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대성당 내부는 웅장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해서 들어가자마자 입이 딱 벌어졌다. 사방에 펼쳐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있으니 내가 아주 거대한 만화경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빛과 어둠이 이루고 있는 조화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 나는 유명한 성가대석을 둘러보다가 유리문이 있는 작은 홀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봤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내가 미사에 이끌린 이유는 지금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자석에 끌리듯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미사였지만 엄숙하고 온화한 신부님의 얼굴과 목소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곧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팜플로나의 해바라기 길에서 흘린 눈물이 부족했던가. 내 흐느끼는 소리가 꽤 컸음에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고 신부님의 목소리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느새 앉은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톨릭 미사의 의식이나 기도 방법 등은 몰랐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평생을 아픔에서 살아가실 부모님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음과 기도로 보내고 미사는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일어나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유리문 앞에서 일행을 만났지만 어두운 실내로 인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숨길 수 있었다.


성당 안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레온 대성당 사진이 프린트된 엽서를 몇 장 샀다. 여행 중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샀는데 첫 엽서를 받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온 여행에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보낸 위로의 엽서를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 한국에서 받는다면 언제고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고 지칠 때, 동생이 그리워질 때,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이 보고 싶어 질 때 엽서를 보면 언제든 레온 대성당의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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