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스페인 톨레도2

by 배종훈

#1

겨울 해는 짧아 구시가를 돌아다니다 다시 톨레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돌 벤치에 앉아 물들어가는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연인이 있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옆에 둔 남자와 가벼운 차림의 여자는 애틋하게 서로를 안고 있다. 직장을 옮겨 멀리 떠나는 남자와 아비뇽에 남은 여자인지, 함께 이별을 앞둔 마지막 여행을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아무 이유도 모르지만 두 사람의 시간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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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내 사랑은 지나고 보면 늘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상대에게 끌려 애틋해지고 그리워지고 매일 만나고 싶어지면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성급하게 꿈꿨다. 내 모든 시간과 꿈을 기꺼이 맞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언제나 나 홀로 낯선 곳에서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얼굴과 가슴에 몰아친 흙바람도 사랑을 위한 시련이라 여기며 미련하게 견디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인 일이었는지는 한참 뒤 깨달았다. 온몸이 모래에 파묻혀 더 나아가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다. 결실은 맺은 사랑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혼자만 영원한 사랑이라 믿고 애태웠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사랑은 온전히 아름답다. 사랑이라는 그 마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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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행의 시간은 내게 있어 가장 확실한 진통제인가 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여행 중 할 수 없는 원고와 일들을 미리 하느라 또 피로와 두통에 시달리지만 여행의 시간 중에는 늦잠도 자고, 어디든 앉아 쉬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느긋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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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꿈꾸는 일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모두 이룰 수 있다는 내 신념 앞에 나는 스스로 흔들리며 지금까지 아슬아슬 쓰러지지 않고 견뎌오고 있다. 여행이 내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없애고 있다. 이젠 흔들리며 걸어도 괜찮고, 가다가 주저앉아도 괜찮고, 잘못된 길에 들어 다시 돌아 나와도 괜찮다.


진짜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그 모든 것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하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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