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유럽 드로잉 에세이 <유럽을 그리다>를 출간한 것은 2015년이었습니다. 직장생활하며 7년동안 조금씩 나누어 다녀오면서 그린 그림과 글로 엮은 책은 기대만큼 큰 반응을 받지 못하고 잊혀졌지요. 5년이나 지난 책이 다시 숨을 쉬고 서점 판매에서 다시 빛을 보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꿈에서나 상상하던 그 일이 일어났다고 할까요?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책이 다시 팔리고 있습니다. 조금씩 관련 도서 분야에서 순위도 상승하고 있고요. 멈추지 않고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온 선물일까요?
제 꿈은 만화가, 여행가, 사진작가, 화가, 레크리에이션 강사, 댄서, 국어 교사, 소설가 등등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내 직원 교육을 담당했던 사내 강사로 시작한 첫 직장 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고단하고 단조로웠죠. 어릴 때부터 하나의 일만하며 사는 것을 견디지 못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을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직장의 일상을 만화로 그려 개인 홈페이지와 직장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만화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 첫 번째 꿈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지요. 그림은 부족했지만 실제 직장 생활을 통해 쓰고 그린 이야기는 차츰 공감을 얻기 시작했고 그 반응과 응원을 원고료로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그렸습니다. 좋은 반응은 마침내 사이트 내 공식 연재로 이어졌고 2년여에 걸쳐 200편을 연재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 기업의 사외보에서 연재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회는 정말 그리고 싶었던 불교 만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불교잡지에 무작정 샘플 그림을 그려 편집부에 보내고 연재를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기회를 주고 싶었던 편집부의 도움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다음달부터 공식적인 연재가 시작되었고 그 잡지에서 약 8년을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애쓰는 노력을 가상하게 봐주신 덕이었죠.
이어 제 두 번째 꿈은 아이들과 시와 소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국어교사였습니다. 좋은 기회가 오길 기다려서는 안될 것 같아 그해 11월 무작정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짜리 기간제 교사부터 시작해 학원강사, 1년 기간제교사 등을 하며 현재 재직 중인 중학교에 정교사가 되었고 어느새 16년째가 되었습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작가의 꿈은 멈추지 않았죠. 여전히 원고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명이었지만 여행을 다니며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도 열고 글과 엮어 세 번째 꿈이었던 그림 에세이 작가가 되어 '유럽을 그리다'를 출간했습니다.
연재 원고가 많았던 어떤 해에는 매주 세 편의 만화 원고와 일러스트를 그렸고, 2권의 교과서 일러스트와 개인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었습니다. 잠을 거의 못잔 한해였지요. 당시 학교에서는 3학년 담임으로 수업과 진학 업무를 하면서 말이에요. 사실 개인적인 휴식과 잠을 줄이는 것 말고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학교에서의 시간 이외에는 모든 순간에 원고를 떠올리고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네 시간 미만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괴롭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꿈꿔온 모든 일을 이루었다는 자랑이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도전하고 있는 무명작가일 뿐입니다.
학생들에게도 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멈추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가 그 분야의 성공이라고요. 성공은 바라보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가합니다. 돈 많이 벌고, 명성을 얻는 것만이 성공은 아닙니다. 하나의 직업만 갖고, 하나의 일만 하며 살기엔 생의 시간이 너무 길고 아깝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를 뿐이라고요.
꿈꾸는 일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모두 이룰 수 있다는 제 신념 앞에 나는 스스로 흔들리며 지금까지 아슬아슬 쓰러지지 않고 견뎌오고 있습니다. 여행과 그림과 글쓰기가 제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준 것은 아니지만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없애고 있습니다.
이젠 흔들리며 걸어도 괜찮고, 가다가 주저앉아도 괜찮고, 잘못된 길에 들어 다시 돌아 나와도 괜찮습니다. 진짜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그 모든 것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하고 것이니까요.
제가 그 사례가 되어 도전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