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 입구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개울을 거슬러 마을 골목을 벗어나면 바로 숲이 시작되고 작은 돌다리가 나왔다. 여느 절처럼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누릴 시간은 없었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이 들어선 경계에 부처님이 계신 극락 ‘안양(安養)’이 눈앞에 있는 셈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안될 만큼 확 들어서 어리둥절했지만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을 지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헛 생각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나니 시원하고 개운했다.
#2
옥룡암은 작은 암자라 둘러볼 것도 없이 한 눈에 모든 것이 들어왔다. 수수하고 단정하게 관리된 뜰을 지나 대웅전 앞에 서면 왼쪽으로 우뚝 솟은 바위가 보이는데 동서남북 4면에 부처, 탑, 승려, 연꽃 등 불교의 요소를 모두 담은 탑곡마애불상군이다. 거대한 바위가 압도하는 힘 때문인지 암자가 확장되어 산 전체가 불국이 되어 있었다.
마애불 주변 공터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 홀로 돌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긴 사람, 가벼운 차림으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 마애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극락의 한순간인 것 같았다.
나는 마애불 바위 남면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삼층석탑 아래 자리를 잡고 드로잉북을 펼쳤다. 오랜만에 현장에서 펜을 들 수 있어 들뜨기도 했지만 잠시나마 불국에 도달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더 좋았다.
#3
마애불 앞에 놓인 붉은 꽃이 핀 작은 화분 앞에서 지나치는 사람마다 합장을 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있는게 보였다. 그림을 그리다가 멈추고 탑과 마애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특별한 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감이 사라지길 빌었다.
#4
어두워질 무렵 불곡에 도착했다. 별다른 유적은 없는 곳이지만 감실 안에 온화한 표정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래좌상이 보고 싶었다. 초를 밝힌 석실 안에서 가만히 미소 지으며 눈을 감은듯한 표정에 가슴이 뭉클하고 또 따뜻해졌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모두가 힘들구나. 나 또한 그러하다. 잠시 쉬고 또 걸어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