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와 극복을 위한 사회복지사 이야기
"방대리, 사회복지 쪽은 안돼..."라는 말을 나는 가끔 듣는다. 이런 답을 듣는 이유는 왜 일까? 답 이전에 질문이 있다. 앞선 대답을 듣는 이유는 내가 안 될 거 같은 질문을 먼저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안될 것 같은 질문을 했을까? 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아래는 내가 안될 거 같은 질문을 말한 것들이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실습할 수 있게 우리 협회를 사회복지현장실습기관으로 등록하면 안 되나요? / 우리 협회는 점점 발전하고 있나요? / 지금 저는 n년차 인데 제가 제 업에 대해서 잘하고 있거나 발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 잡코리아나 사람인에 있는 우리 협회 정보가 올바르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 카카오 채널을 활용한 챗봇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조직 관리를 해보면 어떨까요? / 우리 협회 대외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다양한 서포터즈 활동을 만들 수는 없나요? / 포인캠퍼스 플랫폼을 활용한 우리 협회 자체 교육 플랫폼을 만들어 볼 순 없나요? / 왜 임금명세서를 봐도 아무도 자기 월급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나요? / 이룸센터 대관이 저녁 9시까지 할 수 있는데, 장애인 단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실무 교육을 퇴근 후에 만들어 볼 순 없나요?
더 많은 질문들이 있지만 너무 개인적이거나 우리 협회 내부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축약해 봤다. 지금 해당 질문을 다시 보면서도 난 왜 안될까?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위의 질문에 답을 하기는 쉽다. 그냥 다 일괄적으로 안 돼라고 말하면 된다. 그렇다면 저 질문 중에서 하나라도 될 수 있는 방법과 고민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앞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 시스템, 조직 기여, 지속가능성, 확장성, 당위성, 시의성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얘기하기 앞서 늘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게 된다. 바로 그것은 "방대리, 저거 니만 하고 싶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다.
하아... 저게 나만 하고 싶어 하는 일일까?라는 생각을 1초 정도 하긴 한다. 하지만 브런치의 내 글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난 전국의 조직을 갖춘 우리 협회가 그리고 장애인단체 종사자들이 보다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매일 고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다.
지금 30대 중반의 내가 중앙법인에 있다가 지역사회의 일선 사회복지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내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자란 곳, 내가 성장한 곳, 내 아픔이 있는 곳, 내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터전을 만들었던 곳으로 돌아가 내가 그동안 배우고 실천했던 것들을 내 지역사회 내 일선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싶은 게 내 목표이자 꿈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내가 최대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 일지를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고민의 시작이 앞선 질문들이었고, 그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10명 중 9명은 사회복지 쪽은 안 돼라는 말이나 우리 협회는 안 돼라는 말을 한다. 나 보다 오래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했던 분들이 자신들도 나 같은 생각을 똑같이 했고, 똑같이 시도해 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주 미비하거나 회귀될 뿐이라 했다.
그들의 대답에는 2가지 반응이 있다. 첫 번째는 정말 안 되는 일이니깐 다른 것에 에너지 쓰지 말고 지금은 너가 맡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나는 하지 못했지만 혹시 너라면 할 수도 있으니 한번 해봐라는 반응이다. 그리고 난 뒤에 대답을 1%라도 해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더욱 돈독히 맺고 있다.
그동안 내가 무슨 일을 해왔던 것들이 난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가 궁금한 사람이다. 나는 영어 단어 "beyond"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는 "저편에 [너머]"라는 뜻이다. 나는 이 단어를 얘기하고 생각하면 작은 언덕 하나가 떠오른다.
내가 살던 마을에 작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저 언덕 하나를 넘으면 새로운 마을이 나오고 새로운 풍경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내 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작은 언덕들을 넘어 다니면서 세상에 다양한 경험과 풍경들을 몸과 마음에 담고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작은 언덕을 넘어 다니는 것을 꼭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나도 언젠가는 더 큰 이상향과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작은 언덕이 아니라 큰 산을 넘거나 넓은 바다로 나가야 되는 순간들도 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기심과 조금의 근육통이 없다면 더 큰 산을 경치로 바라보거나 넓은 바다에서 평안함을 받을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 눈에 내가 큰 산을 등정하고 넓은 바다를 해양해야 되는 사람처럼 비칠 수도 있다.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하자고 하면 혹은 해야 된다고 하면 자신들도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것 같아 두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혹은 누군가는 이미 큰 산을 등정하고 바다를 해양하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채 산 중턱에 바다 한가운데 놓여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사회복지현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될 일을 위해서 이런 고민들이 수도 없이 나열하고 정리해야 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난 여전히 즐겁고 행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