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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Apr 09. 2023

당신이 그랬듯 더 낮은 곳으로

섬김과 사랑을 일 할 때 녹여내는 무리함을 실현해 볼 순 없을까?

내가 좋아하는 찬양 중 'WE LOVE - 낮은 곳으로'라는 찬양이 있다. 이 찬양을 들으면서 문득 요즘 내 상황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난 솔직히 겸손하고 싶지 않다고 늘 말한다. 아직은 더 뛰어놀고 싶고, 열정을 과하게 끌어올리고 싶고, 체력과 몸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며 매사에 임하고 싶다. 


그런 모습 속에 우려가 되는 나를 아껴주시는 분들의 말 들 중 '겸손해야 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겸손이란 말이 난 왜 이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까? 그래서 아예 대 놓고 요즘에는 미친놈 행세를 하기도 한다. 난 원래 자존감이 높으니깐. 원래 똑똑하니깐. 원래 미친놈이니깐. 그러니깐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려는 일, 막지도 방해도 하지 마!라는 컨셉을 잡고 살고 있다. 


그렇게 내 멋대로 살다 보면 인생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 속력을 멈추지 못해 원하지 않게 가드레일을 박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자신이 폭주하거나 미친 듯 달렸던 것을 까먹고, 온몸이 너덜너덜 해졌지만 살았다는 안도함으로 순간을 맞이한다.


어느 순간엔 미친 듯 달리던 인생의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도 고장 나고, 가드레일을 박아 저 멀리 날아가 아예 울퉁불퉁한 산길로 인도당하는 경우가 있다. 대게 이런 상황이 되면, 내 힘으로 속력을 내거나 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무기력함이나 방황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기분과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여전히 나에게 크리스천으로서의 흔들리지 않은 하나님과의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의해 때론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인도하는 경우다.


그래서 이럴 때는 바짝 엎드려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묵상하며 찾게 된 찬양이 바로 앞서 얘기한 '낮은 곳으로' 란 찬양이다. 그리고 함께 찾아온 존재가 있으니, 바로 섬김과 사랑 그리고 희생이다. 


섬김이란 표현이 삶 속에서 언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너무 잊고 살았다. 사랑은 연인과의 사랑으로 채워나가도 부족함이 없었다. 희생은 그냥 남들이 안 하는 걸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답을 하기 위한 인생의 순간이 나에게 오고 있는 시점이다.


역시 그 어떤 것 보다 가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솔직히 삶 가운데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가치를 내세우고, 푯대를 세워야 할지에 대한 태도가 지난날 나의 젊은 20대 청년의 시절 같은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한 번쯤, 혹시나' 하는 이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다 보니, 이렇게 또다시 찬양을 듣고 묵상을 하면서 QT를 하게 된다. 


매일 하루 8시간씩 일터에서 섬김과 사랑 그리고 희생을 토대로 이들의 존재 가치를 한번 더 내 삶에서, 내 일터에서,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과 느끼게 해 줄 수는 없을까? 하는 무리하고 이상적인 생각을 해보며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오늘 이 시간의 마무리를 하나님과 함께 마지막을 보내는 글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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