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첫째로 살아가는 당신들과 나누길 위함
1993년 8월 천둥과 번개가 세차게 치는 밤에 할머니댁에서 처음 동생을 봤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갓난아이의 모습을 30년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예쁘고 신기한 상황 속에서 난 첫째가 되었고 형이 되었다.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34년 2개월이 지난 후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과 결혼을 하여 드디어 우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 첫째, 형, 남편 이렇게 4가지의 역할을 갖게 됐다. 이 역할 속에서 현재는 나 > 남편 > 첫째 > 형 순으로 중요도를 두고 있다.
그런데 최금 들어 아주 조금 더 첫째의 중요도를 올려야 되는 상황이 왔다. 남편보다 중요하진 않지만 그 비율을 좀 높였다. 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었다. 예전에는 남자 둘을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한 엄마도 30년을 키웠지만 요즘이 제일 어렵다 말한다. 그만큼 자식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많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노력이 지금 이 시대보다 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노력의 대상과 태도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동시대에 이 노력의 대상과 태도가 무엇 일지를 아는 나에게 여러 일을 물어보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
나를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알아봐 주고 해결해 주시던 부모님을 이젠 내가 그 문제를 알아보고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잠시 로그아웃 했던 첫째로서의 삶을 순간마다 로그인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아무래도 매번 있던 곳(기존 가정)에서 내가 새롭게 만든 곳(새로운 가정)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니, 쉽사리 기존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뭔가 네이버를 쓰던 사람이 구글을 쓰는 기분이랄까... 블로그를 보다 챗GPT를 쓰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여전히 익숙하기 때문에 금세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낼 수 있다. 그렇게 부모님이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지고 첫째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시기다.
첫째들을 위한, 첫째들에게 보내는 헌정문 같은 입장이다 보니, 둘째, 셋째들에겐 심심한 아쉬움을 전한다. 분명 그들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떠나간 첫째의 역할을 갑자기 맡아야 하는 상황은 남겨진 이들의 몫인 것을 분명 첫째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상하리 둘째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 사람은 적당한 시기가 되면 떠나고 그 안에서의 빈 공간을 마음이나 다른 무언가로 채우나 보다.
어찌 되었든 첫째로서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논하기보다는 다양한 역할군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스스로 새기고 있다. 그래서 더 할 일이 많아지고 고민할 것들이 많고 시간도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포기해야 하고 멀리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과 존재들의 작별 인사를 청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 그 어떤 한 것보다 가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째라면 분명 그 선택의 책임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첫째로서의 삶을 다시금 고민해 본다.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선택하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시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