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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Feb 19. 2022

장애인 개인예산제도에 대한 이야기

장애인 개인예산제도를 공부하는 사회복지사 이야기

0. 들어가기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만약 로또가 당첨되면 뭘 할까?라고 말이다. 20억을 받으면 일단 아파트를 사야지. 그리고 차를 바꿔야겠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커피숍을 창업도 해보는 거야. 로또가 아니어도 우리에게 돈이 생기게 되면 우리는 그 계획을 세워본다. 당장에 월급을 받아도 한 달에 내가 얼마를 모아야 하고, 얼마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부분을 고민하면서 경제생활을 한다. 


얼마를 써야 할지 얼마를 모아야 할지 다음에 고민해 볼 문제가 그럼 어디다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만약 제한을 두고 써야 된다고 하면 어떨까?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한정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돈을 써야 하는 값어치를 느낄 수 있을까? 


1. 어디다 쓸지 와 어떻게 쓸지가 정해진 장애인 복지서비스 


바우처 제도란 정부가 수요자에게 쿠폰을 지급하여 원하는 공급자를 선택토록 하고, 공급자가 수요자로부터 받은 쿠폰을 제시하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때 지급되는 쿠폰을 바우처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우처 [Voucher] (시사경제용어사전, 2017. 11., 기획재정부)


우리에게는 상품권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가장 쉽다. 아웃백 상품권, 금강 상품권, 구글 기프티콘,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같이 상품권 형태로 복지 서비스가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을 바우처로 받아서 공급기관에 제출하면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만약 5만 원짜리 아웃백 상품권을 받는다면, 아웃백 말고는 사용할 수 없는 상품권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용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아웃백을 싫어하거나,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상품권은 개인의 욕구에 맞지 않다. 


2. 어디를 쓸지 와 어떻게 쓸지를 장애인 스스로 정해본다면?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돈이 생기게 되면 어디서 어떻게 쓸지를 고민한다. 현재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그때마다 내 소비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장애인에게 이러한 상품권을 자신이 스스로 예산을 짜 보고, 어디다 쓸지 와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면서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관점은 그동안 공급자(복지부, 지자체, 복지관 등)의 입장에서 이용자(장애인 당사자, 장애인 가족)의 입장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존의 장애정도와 가정의 소득으로 인해서 공급받던 것이 아닌, 장애인 개인의 욕구에 대한 수요조사를 통한 예산을 스스로 결정하고 공급받고 집행하게 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사회복지 서비스의 혜택을 너머 장애인 개개인의 사회참여와 자립을 만들 수 있다. 


3. 장애인개인예산제도는 왜 해야 하는 걸까?


개인예산제는 다양한 형태의 현금 지급제 중에서도 특히 예산에서의 이용자 주도를 최우선시하는 제도로, 개인의 욕구 평가에 기반하여 개별적으로 예산을 설계, 배당, 집행하는 제도이다. 개인예산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영역도 논의가 되고 있지만, 장애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다. 


사실 개인예산제도를 비롯한 현금 급여 중심의 사회서비스 제도가 발달한 것은 대체로 이용자 선택권의 강화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방향으로 사회서비스 제도가 진화한 국가들의 경우, 장애 운동이 이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해외 사례의 경우, 장애인의 선택권 정도가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스웨덴의 활동 지원수당, 네덜란드의 개인예산제도, 영국의 직접지불제도와 개인예산제도, 미국의 후기 모형인 개인예산제도 등은 장애 운동의 결과로 제도화된 것이다. 


결국 이용자인 장애인들이 주도하는 경우 이용자의 실질적인 선택권을 높이고자 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경우 이용자의 실질적인 선택 가능성보다는 현물 서비스를 대체하거나 돌봄으로 인한 가구소득 감소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등 다른 목적이 더 강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장애계를 중심으로 자기 주도적 현금 급여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으나, 아직 제도 형성을 주도할 수준의 조직적 활동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4. 결국 장애인의 개인예산제도 도입은 장애인의 자립을 기반으로 한다.


장애인활동지원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지나친 간섭이 장애인의 인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장애인에게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장애애인 당사자가 원하는 서비스가 아닌, 자신이 임의로 해석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중 가사활동 지원에 해당하는 취사 지원이 있다. 장애인 이용자는 라면이 먹고 싶어서 라면을 먹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장애인 활동사는 몸도 좋지 않은 장애인 당사자가 라면을 먹기보다는 밥을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이를 거절하고 밥을 차려 준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이런 상황이 비장애인에게 일어났다면, 그냥 자기가 직접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밖에 나가서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 먹으면 그만인 내용이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제약이 있는 장애인 이용자에게 있어서 라면 하나 먹는 것조차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무엇 하나 자신이 원하는 욕구에 의해서 서비스를 제공받기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예산제도를 통해서 장애인 이용자 스스로 라면을 먹고 싶은 예산을 설계하고 배당받아 집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스스로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자립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립과는 먼 이야기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자립이란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보다는 선택과 통제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깊다. 자립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어떻게 이끌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며, 육체적 능력에 좌우되지 않는 사고의 과정이라고 본다. 


0. 나가기


코로나19로 인해 기본소득이 한동안 정말 핫한 이슈였다.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지급되었긴 하지만, 어디다 쓸지 어떻게 쓸지에 대한 부분은 비교적 제한이 크지 않았다. 각자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받은 기본소득액 안에서 각자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였다. 만약 이런 기본소득을 바우처 형식으로 제한을 두고 사용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국민 전체가 반발하고 정부와 그에 대한 정책을 비판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이기 했지만, 충분히 논의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향후에 이러한 바우처 형식으로 바뀐 다고 생각하면 누가 이 제도에 대해서 환영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현재 장애인 바우처 사업에 대한 부분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다. 


장애인개인예산제도를 통해서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면서 자립을 도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개인예산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한 분명 존재한다. 개인예산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인 나 또한 장애인 이용자에게 어떠한 욕구가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기도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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