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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Feb 14. 2022

장애인단체가 혜화역을 점령한 이유

매일 지하철을 점령하는 장애인 단체를 바라본 사회복지사 이야기

0. 들어가기


아침 8시 40분쯤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나는 '쇼 미더 머니' 다음 참가자로 참여할 듯한 속사포 랩을 구사하시는 분의 민원을 들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장애인 단체가 지하철을 점령해서 지각을 할 것이고, 이에 장애인 단체를 검색하여 가장 먼저 뜬 우리 협회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나는 우리 단체는 아니라고 먼저 주장하면서도, 그분의 출근길을 망친 것에 대해 사과하였다. 현재 장애인단체가 지하철을 점령하고 시위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생존과 관련이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변론을 하거나 반박을 하지 않은 체 전화기 너머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에게 계속해서 죄송하단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혜화역에서 장애인의 기본권을 위해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처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1. 도대체 누가, 무엇을, 왜 시위하는 걸까?

그래도 명색이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로서 해당 이슈에 대한 내용을 모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여러 뉴스와 자료를 검토하면서 확인하였다. 장애인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라면, 왜 이들이 매일마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지 최소한의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시위의 주최 측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모인 단체이다. 전장연이 주최한 이 시위의 가장 큰 포인트는 기획재정부의 장애인 복지를 둘러싼 주무부처에 대한 '예산 확보'이다. 전장연은 “예산 없이 권리 없다! 장애인 권리 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라는 외침으로 매일 아침 8시 혜화역에서 출근 선전전을 진행 중이다.


장애인 권리 예산의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책임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책임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 ▲장애인 활동지원 하루 최대 24시간 보장 예산 책임 ▲장애인 탈시설 예산 24억 원을 거주시설 예산 6,224억 원 수준으로 증액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https://youtu.be/I6LSryskF00

21년째 계속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43분 부터 / 출처 - KBS 사사건건 유튜브)

2.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예산은 확보되어 있지 않다.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애인 복지법'이 있다. 장애인복지법(障碍人福祉法)은 장애인과 관련된 대한민국의 법으로 장애인복지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있다. 1981년 6월 심신장애자복지법(心身障碍者福祉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으며, 1989년 12월에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었다.


일반적으로 법이 제정되거나 개정되었다면, 당연히 그 법을 시행하기 위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고,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법이 만들어지고,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현실적인 부분이 반영이 바로바로 되지는 않는다.


우리 협회도 장애인 복지법 제63조(단체의 보호ㆍ육성) ①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하고 자립을 돕기 위하여 장애인복지단체를 보호ㆍ육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②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의 범위 안에서 제1항에 따른 단체의 사업ㆍ활동 또는 운영이나 그 시설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개정 2015. 12. 29.>


이 2가지 사항이 장애인복지법에 제정되어 있기에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에 대한 편성을 위해 끊임없이 요구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정 장애인단체의 예산을 편성해 주게 되면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단체에 대한 운영과 관련된 지원이 아닌, 사업비로 지원함으로써 여러 장애인단체에게 골고루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한다.

2022년 보건복지부 예산 편성 중 탈시설 장애인 자립지원이 있다. (출처 - 보건복지부)

3.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그들에게 있어 정말 생존의 문제일까?

2019년 2월 처음 우리 협회에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염두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편의시설 확충에 대한 부분이다. 조직지원부와 기획행정부에 있다 보면, 임원 수행을 많이 하게 된다. 회의를 하거나,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휠체어를 탄 분들이 계시거나, 하지 장애가 있으신 분들에게 있어 편의시설에 대한 확보 및 편의성은 우리 협회 직원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다.


기본적으로 장소를 섭외할 때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좌식이 아닌 식탁과 의자가 구비가 되어 있는지,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는 1.5m의 보폭이 되는지, 점자 블록이 있는지,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이 확충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렇게 한 공간 안에서 짧은 동선에서 벌어지는 경우에도 다양한 변수를 고민해야 한다.


비장애인에게는 고려되지 않은 것들이 이동권이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이러한 편의시설이 없다면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되는 장거리 이동의 경우는 어떠할까? 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다.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는 이동권 확보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서울시의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0%를 넘는다. 하지만, 설치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 발생한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로 인해서 한 명의 소중한 장애인이 숨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전국에 휠체어가 타고 다닐 수 있는 고속도로 버스는 8대뿐이다. 장애인 콜택시가 있지만, 지역 안에서만 운행할 수 있고, 예약을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1시간에서 2시간을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30분의 출퇴근 시간이 지연됨에 따른 불만과 불평 이전에 2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도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확보되어 있지 않는 장애인들의 외침과 목소리를 귀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21614160000942

4.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투쟁 그리고 연대감

전장연의 매일 아침 지하철 시위는 자신들의 요구를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주무부처에 편성해 줄 것에 대한 답변을 들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 했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한 3년 동안 우리 협회에 대한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장애인 단체의 리더그룹이라 생각하였고, 중앙부처와 각 유관기관에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 우리 협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기조는 지금도 변함없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서 장애인은 차별받는다. 상대적으로 장애인의 수가 비장애인보다 적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늘 소외되고 배척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애계 (소위 장판) 안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인정한 15개의 장애유형 중 지체, 청각, 시각의 장애유형이 가장 많은 수의 등록 장애인이 있다.


가장 크고, 많은 회원수를 확보했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 당사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우리 단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애인단체의 시위와 사무실로 걸려 오는 민원 전화에 온전히 쿨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들의 시위와 문제가 우리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라면, 우리 단체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의 기본권과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지지와 성원은 비록 힘들지 몰라도 조용히 응원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https://www.social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57

0. 나오기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 14일 아침 8시면 또다시 혜화역에서 그들은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이다. 월요일 아침 그 어느 때보다 출근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 사무실엔 어김없이 전화가 울릴 것이다. 분명 세종대왕님이 만들어주신 이 고귀한 한글의 소중함을 패기 넘치게 쌍욕과 함께 사용하실 분들과 마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신경 쓰지 않은 척 신경 쓸 것이다. 응원하지 않은 척 응원할 것이다. 듣지 않은 척 듣고 있을 것이다. 바라보고 있지 않은 척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다. 그들의 투쟁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 역사 가운데 어떻게 휩쓸려 참여하게 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내가 이곳에서 장애인 복지를 열심히 실현시킬 열정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난 직장인이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만 처리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이슈와 문제에 대해서 늘 귀 기울이기 위함은 단순히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만족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부끄럽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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