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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쿄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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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준 Jun 18. 2017

그림자

나리타공항에서

https://pixabay.com/photo-410562/

도쿄사색(四色)/ 곽병준

그림자 - 나리타공항에서


비행기 창밖의 풍경이 이상하리만큼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처음엔 그 낯선 이유를 몰랐는데, 지난 기억을 꺼내보니 이유가 있었다. 난 주로 출국하는 날은 아침에 떠나는 비행기를 선호했다.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가야 긴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밤을 새우고 아침 비행기에서 잠을 자는 일이 많았다. 매번 비행기에서 잠만 자다 보니 밖을 제대로 내다본 기억이 없었다. 그토록 깨끗한 시야를 비행기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더 멀리,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었다.


안전벨트를 꼭 매라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비행기는 도쿄 나리타공항으로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점점 하강했고 그럴수록 땅에 비치는 그림자는 커졌다. 그림자가 숲을 덮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 있을 어린 나를 떠올렸다. 흐릿한 기억 속에 숲속에 뛰노는 내가 있었다.


난 지방의 작은 아파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아파트 옆엔 우리가 야산이라 불렀던 작은 산이 있었다. 시내와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파트에 산다고 했지만 사실상 시골과 다를 바 없었다. 어릴 적 기억의 대부분은 벌레 잡으러 다니는 일,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던 일이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는 수정(水晶)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집 근처 야산에 있는 작은 냇가에는 수정이 꽤 많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정을 찾는 것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별것 아닌 돌 틈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그 행운이 주는 쾌감이 짜릿했다. 혼자서 찾으러 가는 일도 많았다. 위험하니 혼자 가지 말라는 주의도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럼에도 기어코 찾으러 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수정을 찾으러 냇가에 내려갔던 일. 무언가에 이끌리듯 정신없이 돌을 뒤집어 보고 있었다. 문득 갑자기 흐려진 하늘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무엇일까. 갑작스레 하늘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금방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맑아졌다. 무슨 일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잊어버리고 다시 수정을 찾았을 것이다.


갑자기 흐려진 이유를 지금까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미 한 번 비행기는 나를 지나쳤다. 너무 빠르게 지나갔기에 비행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요상한 하루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별일 아닌 것이라 허투루 생각했다. 좀 더 하늘을 자세히 보았다면 나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손짓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http://maxpixel.freegreatpicture.com/photo-933171

비행기는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급하게 안전벨트를 풀고 가운데 통로로 급히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왜 어린 나는 그렇게 수정에 집착했었을까. 아마 난 수정보다 행운이란 것에 더 집착했던 것 같다. 매일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 막히게 살았다. 그때의 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 난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난 늘 잘못한 것처럼 지내야 했다.


난 행운을 갈구했다. 어떻게든 하늘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매일같이 수정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클로버  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온종일 클로버만 뚫어지라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네잎클로버를 만나는 날에는 난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해했다. 


봐봐. 나도 이렇게 행운이 있어! 


그렇게 하늘에 소리치곤 했다. 억울한 행운에 대한 집착이었다. 하늘에 있는 내가 숲에 있는 내게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넌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야. 넌 계속 행복할 거야.


어릴 적 기억 때문일까? 여전히 행운을 갈구하고 살아간다. 비행기를 나서는 그 순간에도 난 여전히 행운을 갈구했다. 아니 소망했다. 이번 여행도 행운이 깃들기를. 그렇지 않더라도 난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꼭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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