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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준 Jun 22. 2017

300엔 우산

코엔지에서

도쿄사색(四色)/ 곽병준

300엔 우산 - 코엔지에서


넌 너무 잡생각이 많아.

어렸을 때 참 많이 들었던 얘기였다. 살이 잘 찌지 않는 이유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란 얘기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한때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도 들었는데, 지금은 정말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하루에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가 몸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20% 정도가 된다는 걸 보면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도쿄 코엔지에 있을 때였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 애매한 시각이었다. 하늘도 애매한 시간마냥 굉장히 오묘했다. 비가 내릴 듯하면서도 내리지 않을 것 같은 하늘. 툭 건드리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난 정말이지 자주 급작스레 비를 만나곤 했다. 그런 일은 항상 달갑지 않았다. 미리 우산을 챙겨 다닌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런 날은 항상 우산이 없었다. 일회용 우산을 사면 그만이었겠지만 무엇인지 맘이 편치 않았다. 불필요한 소비를 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곽병준/ 히가시코엔지/ CC BY-NC-ND

그날도 혼란스러웠다. 코엔지 길가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이 우산이 당장 나에게 필요한가. 비가 내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괜찮지는 않을까. 우산을 사서 갖고 다니면 굉장히 귀찮지는 않을까. 차라리 돈을 아껴서 잠시 카페에 들어가 있는 것은 어떨까. 우산을 산다면 긴 우산을 사야 할까, 아니면 작은 우산을 사야 하나. 편의점에서 파는 우산은 너무 비싸지 않을까. 이왕 살 것이라면 100엔샵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결국엔, 왜 숙소에서 나올 때 우산을 갖고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의 종착역에 다다르니 후회만이 남아있었다. 이미 기차는 떠나가고 없음에도 후회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침에 전철을 놓치고 나서 왜 일찍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같았다. 난 늘 그랬었다. 전철을 놓치고 나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를 한참이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횡단보도를 조금만 더 빠르게 건넜다면 전철을 탈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후회를 하는 사람이었다. 


한참을 이름 모를 슈퍼 앞에서 서성댔다. 그러다 300엔쯤 되는 투명한 비닐우산을 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내가 우산을 산 이유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야 그 사실을 인정했다. 


헤어짐을 불안해하다가 그녀의 이별 통보를 받고서야 우산을 사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살 것을. 그리 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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