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88년 1월 이전

by BJ Kwon

아싸이면서 공부는 잘했다

청소년 시절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반항적 태도를 보였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나보다 더 좋은 배경과 환경을 타고 난 아이들에 이유 없는 거부감을 보였다. 쌈질하고 돌아다니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껄렁껄렁한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 혼자 잘난 맛에 취해서, 소위 모범생으로 불려지는 아이들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그들을 무시했다. 마치 나는 모범생이 아니었던 것처럼 행동한 적이 많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웃긴 것이다. 나도 어차피 큰 틀에서 보면 모범생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다른 모범생들을 (즉, 평범한 아이들을) 무시하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크게 냈던 탓에, 상당히 건방져 보이는 행동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서 나는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 딱지가 붙는 것은 싫어했다. 거의 욕으로 들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좋은 성적을 낸다"는 의미였는데, 내 딴에는, 공부를 하면 좋은 성적을 내는 건 당연한 건데, 그게 뭐가 대단한 거냐고 떠들곤 했다. 나는 대신에 공부를 별로 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 여겼다.


학교 공부를 무슨 퀴즈풀이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퀴즈 푸는 것을 좋아했다. 퀴즈를 언제나 잘 풀었다는 것이 아니고, 퀴즈 풀면서 고민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답을 얘기해 버리는 애들은 정말 짜증 났다. 더군다나 자기가 고민해서 답을 알아낸 것이 아니고, 어디서 답을 듣고 와서는 그걸 내 앞에서 자랑하듯 내뱉어 버리는 애들,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나에게 학교 공부나 시험 성적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니, 답을 알려주는데 문제 못 푸는 놈이 어디 있어?

답 보고 푸는 문제,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맨날 문제 써놓고 답만 알려주는 학교 수업에는 큰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성적이 나보다 잘 나온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부러워하거나 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 실력대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아이들, 부끄럽지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연하게도, 고2 때까지 전교 1등은커녕 전교 한자릿수 석차를 꾸준히 유지했다거나 한 것도 없었는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나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향해 '너네들은 허구한 날 공부만 하면서 겨우 이것밖에 안 되냐? 나는 니들보다 10분의 1만 공부해도 전교 10등 정도는 한다' 이러고 다녔다.


다만 내가 재미있어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특히 수학, 물리학에 대해서) 평소에 이것저것 책을 읽어보고, 관련된 생각을 하고 나만의 이론을 만들어 내면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그런 행위를 '공부'라 규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선행학습'이란 말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일부러 선행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위에서 말했듯, 선생님들이 자꾸 답을 알려주려고 들이대는 게 짜증 나서, 그냥 혼자서 수학의 정석을 붙잡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미리 공부하기는 했다 ('공부'라기보다는 '탐구'에 가깝다). 극한과 미적분의 이치를 터득했을 때의 그 쾌감이란 첫 키스의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미적분이 물리학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깨달았을 때는 정말 좋아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나는 수학을 문제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하기 위해서 공부했던 것이었고, 그 자체를 즐겼다.


고1 때에 이런 적도 있었다. 교육 과정 개편이니 어쩌니 해서 국정(國定) 교과서가 검정(檢定) 체제로 바뀐 지 몇 년 안 되었을 것이다. 개별 학교에서는 검정에 통과한 여러 교과서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되었는데, 나는 우리 학교의 영어 교과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헌책방에 가서 다른 영어 교과서들을 구해서 보았다. 하나에 백 원인가 이백 원인가 줬던 것 같다. 어차피 교과서란 게 한번 보고 나면 땡이니, 더 볼 것도 없고 해서, 5종의 영어교과서를 다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국영수 모의고사를 봤는데 (정말이지 난 모의고사 잘 보려고 다른 영어 교과서를 봐 둔 게 아니었다. 난 결백하다!), 별로 모르는 문제가 없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수학은 다 맞았을 테고 (모의고사 수학은 평소에 거의 안 틀렸으니), 영어에서도 거의 틀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전국 몇십만 명 중 칠십몇 등! 학교가 떠들썩 해졌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딴 애들은 이렇게 여러 개의 교과서를 미리 보지 않았을 것 아닌가? 난 교과서를 미리 보았던 덕에 운 좋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일 뿐, 이걸 정정당당한 승부로 볼 수 없었다.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시고, 앞으로 더욱더 잘하라고 대우도 해 주셨는데, 이거 어디 원 찝찝해서.. 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모의고사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잘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가난 콤플렉스

어릴 적에는 잘 몰랐는데, 자라면서 나는 우리 집안은 참 의문 투성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들 많이 배우고 교양도 있으셨는데, '아싸'로만 맴돌았다. 언제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고, 이재가 뛰어나서 돈을 잘 벌었거나 재산을 크게 불린 것도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은 재산 축적은커녕, 재정적으로 너무 어렵게 사셨다. 젊었을 때에는 이상을 좇으셨던 것 같은데,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줄에 서 있지 않으니 많이 밀리셨던 것 같다. 60년대 말 70년대 초, 내가 태어나던 즈음 사업하겠다고 독립하셨다가 보기 좋게 말아먹으셨는데, 노모 봉양에 다섯 명의 자식들이 주렁주렁 있는 집의 가장으로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이건 지금 생각이고, 그 당시에 난 그저 부모님에 대해서 불평불만이 많았고 답답한 것 투성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두 분 다 대학 나오셨고 영어를 잘하셨기 때문에, 어릴 적엔 원래 엄마 아빠들은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커보니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 시절 부모님 두 분 다 대학 나온 집은 소수였다. 우리 집은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난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한 해 두 해 살다 다른 집으로 이사 가는 거, 사춘기가 되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그게 아니더라. 번듯한 자기 방이 하나 있고 한 집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들도 주변에 꽤 있었다. 오히려 대졸 부모의 가정에서 내 집 마련을 못하고 이 집 저 집으로 전전하는 것, 그게 더욱더 소수의 케이스였다. 나는 "내 방"이란 게 없었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별의별 집에서 다 살아봤다. 고2 때 아버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림은 더 힘들어졌고, 고3 때에 이사 간 집은 가장 집 같지 않은 집이었다. 누나가 나중에 얘기해 줬는데, 세를 주면서 주인도 조금 미안해했다고 하더라. 대로변, 좋은 말로 교통의 요지, 나쁜 말로 주거하기는 좀 곤란한 곳에서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가게 뒤로 올라가서 3층으로 가면 집 같은 것이 숨어있는 그런 구조였다. 나만의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앉은뱅이책상에서 공부를 했다. 엄청 시끄럽고, 먼지 많고, 번잡하고.


검은 손길

사춘기,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보냈으니 내 성격이 조금은 삐딱하게 형성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있는 집 애들을 싫어했는데, 있는 집에 살면서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고 성적 내고 똑똑한 척하는 아이들은 더욱더 싫어했다. 앞서 말했던 '넌 공부만 하고도 그것밖에 못하냐? 난 너보다 10분의 1만 해도 너보다 훨씬 잘해, 까불지 마 야 인마' 이런 태도는 모든 아이들에게 그런 것이 아니고, 집이 좀 사는 아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때 막연하나마 어떤 복수의 욕망이 마음속에 있었다. 저놈들 두고 봐라. 니들 내가 다 내 발 밑에 둘 거다. 뭐 이런 생각. 내가 얘네들한테 어떤 피해를 본 것도 아닌데, 괜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찌들었던 것이다.


또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집에서 서포트가 안 되면 공부를 계속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다 들었을 때 좌절감에 내 신세를 저주하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등록금 마련 때문에 다들 고생한다는 말도 들어서, 나는 일찌감치 과기대 (현 카이스트)로 진학하려고 마음먹고, 그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학력고사에서 이과는 과학 두 과목 선택이지만, 카이스트 시험은 과학 네 과목 모두 봐야 한다. 그 정도쯤이야).


사실 집안 형편에 대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해소되고 있었다. 특히 카이스트 진학을 결심하고 나서는 마음도 편해졌다. 위에서 말한 대로 그렇게 삐뚤어지고 전투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나의 학습 능력에 대해서 어떤 자신감도 생기고 있었다. 고2를 지나면서, 나름 속으로 타협을 했다.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는 것, 그리 엄청난 잘못이라 볼 수 없다. 다들 그렇게 한다. 나도 그래야겠다. 그래서 마음먹고 공부하니 성적이 원하는 대로 나왔다.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보다.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 동안 별로 배운 것은 없어도, 몇몇 선생님들로부터는 좋은 조언을 많이 들었다. 특히 한 분, 자기도 어릴 적에 집안 형편 때문에 목표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할 입장이었는데, 문득 오기가 생겨서 일단 노력해 보고 시험에도 붙어보자. 합격 한 다음에 멋있게 포기하자, 그리고 그때 가서 세상을 원망하자고 결심하고 밀어붙였다고 했다. 결국에 합격하고 나니 길이 보이더라. 이 말씀이었는데, 그런 조언이 어린 아직 미성숙하고 불안해하는 어린 소년에 큰 힘이 되었다.

사실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빤히 다 보고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직접적으로 선생님들과 개별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선생님들은 학생들에 대해서 웬만큼 다 파악하고 있다. 더구나 내 경우, 튀는(?) 모의고사 성적이나 수학 경시대회나 글짓기 대회 등 수상 이력이 있어서, 내가 모르던 새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도 같다.


고등학교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지만, 세상에는 나쁜 선생님 역시 존재한다. 고1 때 수학 ㅈ선생님. 그와의 인연은 나를 수렁에 빠져들게 했다. 처음에는 달콤하고 신나는 인연이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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