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의 영광과 유혹의 접근

88년 1월 4일-1월 16일

by BJ Kwon

88년 1월 4일(월)—합격의 영광

합격자 발표 날이다. 학력고사 점수를 맞춰본 후 합격을 자신하고 있었기에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서울대 교문 안쪽 운동장 안에 합격자의 수험번호들이 학과별로 게시되어 있었다. 공과대학 쪽으로 찾아가서 내가 지원했던 학과에서 내 수험번호를 찾았다.


"붙었다!"


같이 갔던 누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축하해 동생, 서울대생, 아, 부럽다~"


어머니는 나를 한번 꼭 안으시더니, 아버지에게 전화하러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잠시 후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저 합격했어요." "축하한다. 네가 우리 학교에서 학력고사 점수가 제일 높게 나왔는데, 당연히 합격이지."


1988년 입시부터 선지원, 후시험(먼저 대학과 학과를 정한 후 학력고사를 보는 것) 제도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학력고사 몇 점을 받았는지 모르는 채 지원한 곳에 합격 불합격 여부만 알게 되었다. 따라서 학력고사 점수를 몇 점 맞았는지는 순전히 학생 개인의 짐작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 고등학교에서 학력고사 수석, 이런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87년 학력고사에 비해서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래도 내 가채점으로 312점이 나왔고, 신문에 나온 전국 등위표에 의하면 자연계에서 삼백 몇 등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그때 전국 응시생이 대략 60만, 자연계 절반 뚝 잘라 30만이라고 치면 전국 백분위는 99.99%에 해당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모의고사에서 학교 전체 1등을 한 두 번 해 보았고 전국 등수가 두 자릿수인 적도 있었지만, 기복이 심해 자타가 공인하는 소위 '전교 1등'은 아니었다. 정규 시험에서 꾸준히 1등을 한 친구는 따로 있었다. 그 친구는 학력고사를 망쳤고 나보다 점수가 안 좋게 나왔지만 (그 역시 본인 말이다), 의예과에 합격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내가 예상하던 대로 문제가 나왔고, 그래서 점수가 잘 나왔던 것이었고, 그 이상으로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꽤나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것 같다. 누가 수석하는지 술 값 걸고 내기도 하고 말이다.


얼떨떨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서울대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 간다 혹은 안 간다는 생각도 안 했다. 그냥 나는 목표를 정했고, 목표를 위해 달려온 것일 뿐이다. 다만 승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세상이 달라 보였다. “해 보니까 되네” 이 정도 소감에서 “이제, 다른 것도 하면 되겠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1월 11일--포섭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한 주일이 그냥 가버렸다. 합격의 기쁨이 차츰 젖어들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대학 등록금 문제에 나름 걱정을 하고는 있었다. 원래 그 때문에 카이스트 진학을 목표로 했다가 나중에 서울대 가도 충분히 학비를 벌면서 학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목표를 수정한 터였다.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부모님께는 입학금만 마련해 주시면 제가 알아서 해 보겠노라고 말씀을 들여왔다. 입학금 55만 원 (한 학기 등록금 45만 원에 입학금 10만 원, 그것도 국립대라서 싼 것이지만)을 어떻게 마련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융자나 사채를 쓰셨을 거다.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과외 금지에도 불구하고 "몰래바이트"라는 이름으로 중고생 상대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몰래바이트가 아니더라도, 무엇을 해서라도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여전히 있었다.


1학년때 수학 선생님이었던 ㅈ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짜장면 사주겠다고 나오란다. ㅈ선생님은 털털한 성격에 입담이 좋아서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분이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지만 1학년때부터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여러모로 챙겨주셨던 분이다. 그 선생님은 3학년때에는 문과반을 담당하셔서 최근에는 얼굴 마주친 적도 별로 없었는데, 웬일로 전화를 하셔서 내심 반가웠다.


그 선생님과 좋은 시간을 가졌다. 점심만 사준 게 아니고, 당구장에도 같이 가서 당구 입문을 시켜주셨다. 이제 나를 학생이 아니고 성인으로 대우해 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앞으로 학비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셨다.


"글쎄요. 뭐 어떻게 하면 되겠죠."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소개해 줄까? 조금만 수고하면 1년 치 등록금을 한큐에 벌 수 있다고"


며칠 뒤, 전 선생님의 소개로 ㅎ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은 연세대를 나왔다고 소개하면서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대단하게 생각한다고 나를 치켜세웠다. 옆에 있던 ㅈ 선생은, 내가 우리 학교 학력고사 수석이라는 얘기로 맞장구쳤다. 아버지나 삼촌뻘 되는 두 분이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칭찬과 덕담을 해 주셨다. 앞으로 인생 폈다, 이제 쭈욱 쭈욱 잘 나갈 것이다, 나중에 크게 되면 자기들을 모른 척하지 말라는 등 말씀을 하시는데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해야 할 아르바이트가 어떤 것인지 물었다. ㅎ사장은 아들이 재수생인데 자기를 닮아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니, 잘 좀 가리켜 달란다. 어? 나보다 나이 많은 형을 내가 어떻게 가르치나? 그것도 난 아직 과외 경험도 없는데, 옆의 ㅈ선생님에게 속삭이듯 슬그머니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전선생님은 바로 눈치를 채고 "걱정하지 마. 네가 충분히 할 수 있어. 사장님 말씀만 잘 들으면 돼"라고 하셨다.


두 사람을 이후 이틀 동안 매일 만났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ㅎ사장은 다양한 주제로 세상이 이렇게 저렇게 돌아간다는 등,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다는 등, 썰을 풀었는데 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동안 모범생으로, TV나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고 학교 공부만 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으로 들었던 정보가 거의 전부였던 고3 수험생, 나에게는 이들이 해주는 세상 이야기, 인생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이렇게 묻는다.


"아줌마,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 비싸도 돼."


어쩌다가 부모님과 외식을 할 때, 언제나 가격을 신경 쓰시고 비싼 것을 피하시던 부모님의 모습과 너무 달랐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이런 거구나'


ㅈ선생은, 우리 학교 내에서도 돈을 잘 쓰는, "손 큰"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도 이미 나 있었다. 본인은 자가용을 장만할 수는 있는데, 그것도 귀찮은 게 많아서 그냥 택시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서울시내에 돌아다니는 수 만대 택시가 다 내 자가용이여~~ 하고 호기삼아 이야기하던 분이었다. 그의 이런 부분을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는데, 며칠 동안 바로 옆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다르게 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한번 지나가면 영원히 잃어버린다. 시간을 잘 투자해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데, 돈 때문에 고민하거나 돈 좀 아낀다고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다. 귀에 새록새록 들어왔다.


ㅎ사장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ㅈ선생님에게 나는 그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선생님도 언제나 감탄을 많이 한다고 했다. 자기도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ㅎ사장님은 보통 사람들보다 몇 수 앞을 더 본다고 했다. 다시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아르바이트 이야기는 안 하시네요. 언제부터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건 왜 궁금해? 혹시 돈이 당장 필요해?"

"뭐, 그냥, 아무래도, 돈은, 바로 벌 수 있으면 좋죠"


그날 신나게 먹고 떠들고 놀고,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는데, ㅎ사장이 지갑을 연다. 아마 ㅈ선생이 눈치를 줬나 보다.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동업자, 이거 용돈으로 써"


내 손에는 빳빳한 만원 권 다섯 장이 쥐어져 있었다.


"저 아무 일도 안 했는데요."

"다음부터 하면 돼"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이 돈을 받아도 되나 싶어서, 선생님을 쳐다봤다.


"뭐 하냐? 용돈 필요하다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큰 액수의 돈을 그것도, 내가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손에 쥔 채 멍한 채로 서 있었다. 그래, 다음부터 일 하면 되겠지.


1월 16일—모의

친구들과 자주 가던 분식집에서 라면이 3,400원 하던 때이니, 갑자기 생긴 5만 원은 엄청 큰돈이었다. 다음날 낮에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데, 한턱을 크게 냈다. 쉽게 생긴 돈이라서 그럴까? 돈을 쓰는데 별로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마냥 돈 앞에서 벌벌 떠는 내가 아닌, 돈 앞에서 대범해지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삼삼했다.


그날 저녁 ㅈ선생님이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고, 잠깐 보자고 했다. 그는 난처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저기, 네가 아직 경험도 없으니 아무래도 과외 아르바이트는 힘들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이 있어. 그 친구가 이번에 후기 시험을 보는데, 네가 대신 가서 시험을 쳐주면 된다."

"후기 시험이라뇨?"

"다음 주 금요일, 28일이 후기 학력고사 날이잖아. 네가 걔 대신 가서 시험 봐주라고"

"그러면 안 되지 않아요?"

"너 그럼 학비는 어떻게 충당할 거야? 뭐, 몰래바이트는 쉬운 줄 알아? 이거 지금 기똥찬 기회야. 하루만 반짝하면 1년 치 등록금이 생긴다. 안 할래?"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다가 걸리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잠시 후 한사장을 다시 만났다. 그는 불안해하는 나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지금 재수생이 하나 있는데, 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그분 아드님 아니었나? 캐묻는 나를 "그게 누군가 인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 묻지 말고 일단 들어보라"라고 했다. 그 학생은 경희대 의예과에 이번에 꼭 합격을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오직 나만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후기대 입시 원서는 이미 제출된 상태이고, 당장 내 증명사진 하나만 가져오면, 입시원서, 수험표, 주민등록증 사진을 바꿔서 감쪽같이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에 걸리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절대 걸릴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내가 합격을 못하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옆에 있던 ㅈ선생님은 내 평소 실력대로만 하면 합격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부담 없이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ㅎ사장은 능구렁이 같은 목소리로 받아치면서,


"아냐, 평소 실력대로 하다가 수석입학이라도 하면 안 돼. 그럼 곤란해져. 그냥 몇 개 틀려버려."

라며 껄껄 크게 웃었다.


그렇게 내 불안감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면서, 그 두 사람은 이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을 확 바꿀 만큼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007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걸 상상해라. 너는 지금 비밀 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멋있지 않냐?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예 해 보겠습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저 못하겠는데요"라고도 못하고,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 전 선생님은 다음날, 며칠 동안이라도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며, 독서실을 끊어 주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은 혹시 아는 사람 만날까 봐 싫다고 해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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