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1월 18일-28일
12월 22일 학력고사 이후로 책은 손에 대지도 않아서, 4주 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시험 준비를 다시 하려고 하니 처음에는 조금 헤맸다. 그래도 공부하고 시험 보는 게 제2의 본능처럼 훈련된 몸이니, 다시 적응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 정도 예전에 만들어 놓은 요점 정리 노트 다시 훑어보니, 다 기억이 났다. 영어, 수학 같은 경우는 1년 내내 모의고사 때에도 틀린 문제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실수로 하나 둘 정도 틀리고 그랬는데, 실제 학력고사는 다 맞았다. 영어 수학에 대해서는 며칠 남겨놓고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었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문제 유형이 이렇게 나오면 이렇게 대처하고 저렇게 나오면 저렇게 하는 것—이 준비였다. 한 달 전에도 학력고사에 임박해서는 따로 공부를 한 건 없었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준비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방식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혹시 이러다 걸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한 달 전 보다 긴장은 은근히 더 되었다.
이런 내 마음을 ㅈ선생님은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선생님과는 시험날까지 매일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지금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내 선배들도 다 했다고 하셨다. 이게 다 사장님 인맥이 각 대학에 다 퍼져있어서 가능한 건데, 이과는 경희대 의예과, 한의예과, 아니면 한양대 의예과나 공대의 몇 인기과 정도가 주 타깃이고, 문과는 경희대나 국민대 법대나 경영 경제학과 정도에 집어넣었다고 했다. 작년까지는 선시험 후 지원으로 학력고사 한 번 본 것으로 전기, 후기 다 지원하는 것이어서, 재학생으로서는 이 일을 못 했고 졸업생만 할 수 있었는데, 금년부터 후시험이 되어서 전 후기 학력고사가 따로 시행되는 관계로 내가 재학생으로 처음 이걸 하게 되는 사례라고 했다. 내 선배들 중, 누구라고는 말 못 하지만 이거 한번 하고, 사시나 행시 패스해서 잘 나가는 사람도 있고, 공대 나와서 삼성이나 국책 연구소에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번뿐 아니고, 두세 번 했던 케이스도 있다고 했다. 각 대학의 실무자들하고 워낙 잘 알아서 응시원서, 수험표 사진을 바꿔치기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고, 대리시험을 치는 "선수"들은 절대 걸릴 일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건 아무 일도 아니다. 네가 아직 어려서 겁내는 것 같은데, 앞으로 세상 살다 보면 이것 보다 더 험하고 짜릿한(?) 일들을 하게 될 거다. 두고 봐라.
이야기 중간에, "그래도 이거 불법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 살면서 고민은 좀 될 것 같아요" 라며 말을 하자, 선생님은 바로 말을 끊고 날 설득했다. "그럼 넌 네 부모님처럼 살고 싶냐? 세상 가치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녀, 일단 너는 어떻게 해서라도 힘을 키우고 돈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얽매이지 않도록 살아야 하지 않겠어? 눈 딱 감고 지금 이걸 하는 거야, 그리고 이걸 종잣돈으로 해서 앞으로 더 큰걸 해야지. 앞으로 이런 게 정 마음에 걸리면 모아 놓은 돈으로 장학금으로 기부해서 가난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면 되잖아. 살다 보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어."
세월이 흘러서 복기해 보니, 이건 영락없는 가스라이팅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범죄를 범죄라 이야기하지 않고, 약간의 불법으로 다운그레이드시키고 이야기를 시작한 뒤, 불법을 다시 편법으로 물타기 시키면서, 이거 별 것 아니니 눈 한번 딱 감고 해 주면 우리 모두 다 좋은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적당한 떡고물과 함께 밀어붙이면, 거절하기 힘들다. 고3을 이제 막 마치고 그동안 공부만 하고 살았던 내가 세상을 알아봤자 얼마나 알까? 학교 선생님이라면 부모님 다음으로, 아니 때로는 그 이상으로, 존경하고 모든 권위를 인정해 드리는 분위기에서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리였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 지금은 아마 아이들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다 알아차릴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난 몰랐다. 그 표현도 아마 그때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거절을 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되는 줄 알았다.
아무튼, 선생님과 매일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꽤 세뇌가 되었고, 내 마음은 더 안정이 되었다. ㅎ사장은 시험 전날과 당일 날, 경희대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시험장으로 가도록 하는 게 좋다고 하였다. "부모님한테는 뭐라 말씀드려야 하나요?" 내가 난처한 모습을 보이자, 선생님은 바로 집으로 전화를 해서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제가 이번 주에 시골 본가에 가는데 아드님을 같이 데려가고 싶다, 2박 3일 동안 잘 데리고 있다 오겠습니다." 어머니는, 하늘 같은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당연히 감사인사와 함께 허락해 주셨다.
드디어 거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원래 시험 전날은 예비소집일이라 시험 보는 대학에 가서 수험표를 교부받고 고사장의 위치를 대략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ㅎ사장이 손을 미리 써 놓아서, 나는 가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시험 당일은 물론, 다음날 면접에는 반드시 가야만 한다고 했다. 우리 셋은 이날 대낮부터 만났다. 난 이제 이들과 만나서 음식을 주문할 때,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비싼 음식을 거리낌 없이 부르게 되었다. 돈 많은 애들이 떡과 계란 들은 500원짜리 라면을 시켜 먹을 때, 400원짜리 라면에 만족해야만 했던 과거의 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이날 한사장으로부터 수험표와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얼굴은 내 얼굴인데, 이름이 한희찬(가명), 영 낯설다. 한사장은 특유의 능글능글한 얼굴로 말했다.
"희찬아, 넌 이제부터 낼모레까지 희찬이다. 자, 네 이름 말해봐."
내가 우물쭈물하자,
"이 친구 좀 뻔뻔해져야겠구먼!" 하고 껄껄 웃었다.
"희찬아, 너 용돈 필요하지?"
"아뇨, 저번에 주신 5만 원 아직 다 안 썼는데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ㅈ선생이 가로막았다.
"야 인마, 어른이 말씀하시면 그냥 예하고 받아야지."
그는 5만 원을 나에게 쥐어 주고 다시 말했다.
"ㅈ선생, 희찬이 옷 좀 사줘야 하겠어요. 내일 이렇게 입고 가기는 좀 그렇죠?"
ㅈ선생님과 나는 바로 롯데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본 적이 없어서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모르니, 선생님이 여기저기 다 알아서 챙겨줬다. 꾀죄죄한 남방, 쭈글쭈글 펑퍼짐한 바지, 누가 입던 걸 물려받은 건지 기억도 안나는 파카를 걸치고, 더러운 운동화를 신고 있던 나. 여러 매장을 돌면서, 깔끔한 셔츠, 잘 다려진 바지, 잘 매치되는 혁대, 멋있는 애들만 입는 줄 알았던 날렵해 보이는 파카 같은 깔끔한 흰색 잠바, 거기에 랜드로바 단화까지 신으니, 순식간에 신데렐라가 되었다. 가방도 사줬다. 이제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 다운 가방 하나 있어야 한다며, 007 가방 같은 건데 6,70년대 스타일이 아닌 최신 80년대 스타일로 멋있는 걸 차악 들고 서 있으니, 완전 딴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마이 정도는 입고 다녀야 할 텐데, 내일 시험 보러 가는데 너무 튀면 안 좋아서 오늘은 됐고, 이번 일 마치고 바로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날 조선호텔로 데려가서 체크인해주었다. 무궁화 다섯 개 호텔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좋은 방을 골라준 거라고 했다.
선생님이 떠나고, 방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서 1층 식당으로 갔다. 이제는 이런 곳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는데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라고 그때는 생각했지만 사실 꽤 어색했을 것이다). 메뉴에는 불고기 떡볶이가 있었다. 지금 시점으로 보면 별 대단한 메뉴가 아니지만, 그런 음식을 그때 생전 처음 보았다. 불고기는 고급 음식으로 1년에 한두 번이나 먹을까 하던 것인데, 그걸 떡볶이와 함께? 가격은 무려 6000원!
그걸 먹었는데, 맛도 맛이지만, 서빙을 하는 직원이 나를 완전히 왕처럼 대해주었다. 나보다 나이 한참 많은 어른들이 공손하게 와서 음식을 쫘악 깔아주고, 두 손으로 밥뚜껑을 열어주면서 어떤 것이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라고 극존칭으로 말하는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저 고등학생인데요. 그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척 어색할 것 같아서 멈췄다. 그때 깨달았다. 아, 돈이 많으면 이런 대접을 받는 거구나.
방에 돌아와 혼자서 우두커니 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우선, 그동안 나는 집 떠나서 밖에서 자 본 적이 수학여행 때, 교회 수련회 때, 그리고 몇 번 시골의 친척집에서 자 본 것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내일 하는 미션에 약간 긴장감을 느낄 뿐 큰 부담은 없었다. 이렇게 혼자서 잠을 자는데 그것도 최고급 호텔의 최고급 방에서 잔다는 것, 아직 뭐가 뭔 지 몰랐다. 다만, 없는 집에서 자란 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눈에는, 서울 도심의 야경이 황홀하게 멋있었다. 호텔 방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묵은 때를 벗겨내면서 꾀죄죄하고 보잘것없는 과거도 같이 씻겨 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들처럼 좀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ㅈ전선생님이 너무나 고마왔다.
예정대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했다. 잠시 후 전선생과 한사장이 도착했다. 호텔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점심 도시락으로 주문해서 가방에 넣었다.
우리는 한사장의 로열 프린스를 타고 경희대로 향했다. 시간은 여유 있게 출발했다. 한 달 전, 서울대로 시험 보러 갈 때 새벽부터 버스 타고 갔던 생각, 정문에 내려서 공대까지 걸어가는데 왜 이리 길까 가도 가도 끝이 없게 느껴졌다는 게 생각났다. 오늘은 이렇게 편안하게 자가용을 타고 가니, 마음도 훨씬 안정되고 좋았다.
사장 기사가 말했다.
"길도 별로 막히지 않고, 좋습니다. 신호도 잘 받고. 이제 10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이제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어. 준비한 대로 그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때였다. 갑자기 한사장이 외쳤다.
"어, 어, 저거 뭐야, 저 미친놈이!!!!"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벌어져서 기억이 엉켜 버렸다.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몸이 앞으로 쏠려 나가나 싶더니, 내 얼굴을 기사석 뒤에 크게 들이받았다 (그때는 뒷 좌석에서는 안전벨트 착용을 거의 안 하던 시절이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엔진이 약하게 공회전되는 소리가 털털털하고 들리면서 정신을 차렸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ㅎ사장은 눈이 풀렸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들을 수 없었다. ㅎ사장 기사는 밖에 나와서 허둥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ㅈ선생은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일단 차에서 나왔다.
순간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입고 입던 흰색 잠바에는 뻘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