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종태 Oct 19. 2016

허수아비 때리기

논증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오류 중에서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라는 것이 있다. 이는 명백히 비형식적 오류인데, 상대방의 입장을 곡해함으로써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다른 사실을 상대방의 입장으로 대체(‘허수아비’)하여 그 환상에 반박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아무리 상대를 논리적으로 공박해보지만 상대방의 본래 주장을 전혀 반박하지 못한다. 이러한 수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존재해 온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토론이나 논쟁, 대화의 문화가 부족한 탓일 수 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살아온 우리들에게 서구식 대화나 토론은 대단히 낯설 뿐만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불편한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가치의 다양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각 개인과 단체의 주장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정당성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향상시킨다는 그릇된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까닭에 어떻게든 틀린 것과 잘못을 물고 늘어지는 수법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습성화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문단에서 벌어지는 논쟁 가운데 서울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게재 시의 선정성을 둘러싼 논쟁도 그렇고, 류근 시인을 둘러싼 여성 비하 논쟁도 그러하다. 시인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그러한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높여 여론재판 형식으로 시인들을 난감하게 만든 사례였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사들 중에서 비리를 저지른 몇 사람이 그러니까, 교사 집단을 비리로 얼룩진 집단이라고 여기는 논리와 유사하다. 단지 범죄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몰고 가려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치판에서 이런 현상은 너무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은 ‘참’이라고 고정시켜 놓고, 상대방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하려니 당연히 상대방 주장의 핵심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놓은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들은 생각의 폭이 좁고 깊이가 얕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가급적 극단적이고 강경하게 말해야 토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평소 자신의 주의나 주장이 선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입장을 고정적인 ‘참’에 놓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추측으로 세워 놓고, 그 부분을 공박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몰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생각한다는 것은 다양한 측면을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다. 자신의 생각을 포함해서 다양한 다른 주장과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열린 사고로 논쟁과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은 바꿀 생각이 없고 상대방의 잘못만을 주장하려다보니 범하게 되는 오류인 셈이다.

어쩌면 일천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볼 때 성숙한 토론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바탕에서 오랜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제시하고, 상대의 주장을 공박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의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경제나 여타의 분야처럼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자리잡을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성숙한 토론문화를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출발은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는 태도이다. 그런 다음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