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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종태 Oct 19. 2016

빈대도 낯짝이 있는데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였던 조부가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되고, 벼슬길도 막혀 방랑을 시작한 김삿갓. 하루는 거나하게 취해서 아버지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자기는 머리도 좋고 과거에도 합격을 했는데 조상을 잘못 만나서 벼슬길도 막혀 처량한 신세가 되었노라고. 하지만 아버지도 억울하기는 그에 못지않은데, 아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언성이 높아지고 핏대를 올리다가 이눔의 자식을 때려죽인다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 나섰다.

한참 도망가다가 보니 취한 걸음으로는 붙잡힐 것만 같다. 잡힐 경우 부친의 몽둥이 세례를 받을 것은 뻔한 일. 그래서 길 한복판에 작대기로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그 중심에 버티고 서서 하늘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든지 이 안에 들어오는 놈은 개자식이다!’ 거의 다 잡았다 싶은 순간에 뜻밖의 말을 들은 부친은 아무리 아들이 잠시 봉변을 피하려 짜낸 꾀라지만 아늘놈에게 ‘개자식’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 둘레만 뱅뱅 돌다가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다.

이희승 선생의 수필 ‘딸깍발이’에 나오는 이야기다. 딸깍발이는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말로 남산골 샌님을 부르는 별칭이었다. 비 올 때나 신을 나막신을 마른 날에도 신고 다니면서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니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이들은 삼순구식(三旬九食)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엄동설한 삼척냉돌에 위아랫니를 부딪치면서도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고 벼르더라는 사실로는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지조, 이 몇 가지들이 그들의 생활 신조였다고 쓰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심, 자존심, 체면, 염치를 접은 사람이 너무도 많다. 불법과 위선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은 똑바르고 깨끗한 척 한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크고 작은 비리가 그렇게 많은지 부동산 투기, 탈세, 편법증여, 병역기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힘 없는 서민들은 감히 꿈도 못 꿀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것이 드러나곤 한다.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그런 정도의 불법은 저질러야 하는 것인지,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길 정도가 되니 그 자리에 간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속담에 ‘냉수 마시고 이 쑤신다.’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체면을 중시한다느니 허례라느니 하는 말로 매도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들만의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읽을 수 있다. 비록 굶었을망정 고기를 먹은 체하는 자존심. 선비들에게 요구돼 온 청렴과 결백, 체면의 가치관이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돼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 논리를 앞세우고 자신의 이득만을 셈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보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게 뒤틀린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 법’으로 벌집 쑤신 듯하다. 한 쪽에서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애초의 입법 취지에 맞게 시행이 돼야 한다하고 한 쪽에서는 서민 경제의 위축과 이해충돌 방지 규정, 국회의원 배제의 문제, 언론과 사립 교원까지 포함시킨 법의 대상 범위 논란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한 현실이다.

이러한 법이 제정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청렴하지 못한 사회 구조에 원인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의 경계를 정하는 것 또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생각한다면, 누구에게는 적용하고 누구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을 두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본다.

빈대도 낯짝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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