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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종태 Nov 03. 2016

이종교배 시대의 노벨문학상

최근 유전자변형농산물, 일명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했을 때, 그것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측과 아니라는 측의 대립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건강 상의 이유만이 아니라 종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농산물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이종교배가 진행되다보면 순종은 사라지고 잡종만 남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노벨상위원회는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다”,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쓴다”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선정한 이유를 발표했다. 그런데 세계적인 팝스타인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언짢은 것은 나뿐인가? 그의 수상이 전 세계의 시인들, 주린 배를 틀어쥐고 생활고에 찌들면서도 영혼을 찍어가며 시를 쓰는 시인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인가?

누가 받아야 한다든가, 우리나라 시인이나 작가가 받아야 한다는 국수주의적인 주장을 하자는 게 아니다.

노벨문학상은 1895년 11월에 작성된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이상주의적 경향을 가진 가장 주목할 만한 문학 작품의 저자’에게 수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밥 딜런이 자유와 평화, 반전(反戰), 인권 메시지를 직접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대중음악 뮤지션이라는 점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그의 ‘노래’들이 ‘이상주의적’일지는 모르지만, 독자들 중에 그의 시를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되며, 수상 이전에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며칠 전 우리나라 유명한 가수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관련 방송 뉴스 인터뷰에서 ‘전 세계 어떤 시인의 시를 수억 명이 암송하느냐’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시에 대한 모독이요, 시인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시인의 작품을 수억 명이 암송하고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암송을 하고, 사랑한다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자격이 된다는 말인가?

일부 언론들은 그의 수상을 놓고, ‘문학의 지평을 확대했다’고 하는 등의 반응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수상자인 밥 딜런 자신은 그의 수상이 결정되고 난 후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코스모폴리턴 호텔 첼시 극장 무대에서 열린 전미 순회공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감을 묻는 청중들의 질문에 그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하고, 묵묵히 노래만 부르고 퇴장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쩌면 그 자신도 이 상의 수상을 엄청나게 황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시와 음악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다양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음악은 음악이고 시는 시이다. 이러한 그의 수상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정밀한 화학 이론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해서 나에게 노벨화학상을 수여한다면 내가 그것을 수상해야 할까. 소설은 소설이고,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

따라서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 주어진 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상은 노벨이 유언한 ‘문학 작품의 저자’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면, 순수 문학의 영역이 지켜져야 할 성역인 셈이다.

아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저명한 가수이기 때문에 그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할 자격이 있다.

<제주일보>(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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