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끝낸 벚나무,
벌레 먹은 낙엽 그늘이 마당에 드리운 가을밤,
소피가 급해 화장실을 가려는데
신고 나설 신발이 없다.
문득 큰놈의 신발을 신었는데,
어느 새 그놈 신발이 내 발에 맞는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구나.
네가 어느 새 세상을 밟고 살아야 할 만큼
발을 키웠구나.
그 발로 밟아야 할 이 세상에는
아직 그늘이 너무 많은데,
내가 그 그늘을 다 지우지 못했구나.
소피 마려운 것도 모르고
마당 복판에 서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본다.
벚나무 잎사귀 한 장 무심히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