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기술서에 없는 일도 해야 할까요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직무기술서에 쓰이지 않은 ‘일’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를 들면 사회 초년생 시절에 손님용 커피 심부름을 비롯하여 다과 준비하기, 사무용품 구매하기, 이벤트/행사 준비하기가 있다. 이런 일들은 간혹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가 있는데 본업이 아닌 잡일을 하다가 정작 근무 시간 내에 본업을 처리하지 못하여 야근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팀장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는 했다.
“팀장님, 저의 일은 어디까지인가요?”
회사에 들어가서 처음 계약서에 사인할 때 받았던 ‘직무기술서’ 업무만 하면 좋겠지만(그중 일부는 애매하게 쓰여있는 직무기술서 한 줄이 내 발목을 잡기도 한다) 대개는 본업 외의 일도 생긴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업무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고, 팀에 관련된 업무일 수도 있으며, 크게는 회사에 연관된 일에서 파생된다.
하얀 도화지 같았던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이켜보면(사회 초년생 :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어디까지가 나의 업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명확하지 않음은 혼란을 초래한다. 게다가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성격은 YES 우먼으로 살다가 ‘본연의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욕먹고 뒷말 듣는 것이 무서워서 모두에게 최대한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내 일로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의 SOS를 외면하지 못했고 나의 급한 일보다 타인의 일을 먼저 처리하여 결국 욕먹고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조직생활에서 개인의 평가는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니 나의 실수로 인한 업무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 중 어느 것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하나하나 신경 쓰는 태도도 건강하지 못하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면 그건 사실인 거고 나는 내 길이 잘 맞는지 방향만 확인하면서 길을 걸어야 한다. 회사에서는 사회성도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은 일을 ‘잘’ 해야 한다. 상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리고 직책과 역할에 맡게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해 내면 우선적으로 내가 감당할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그다음이다.
한 번에 열 개의 일이 떨어지면 스스로 우선순위를 매겨보자. 그리고 정해진 기간까지 주어진 모든 일을 하지 못하겠으면 미리 사수나 상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결국은 일도 사람이 모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융통성 있게 조절이 가능했다.
말을 안 하면 문제가 생긴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미리 파악해 보고 중간보고를 하는 것이 더 큰 폭탄을 만들지 않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의 단계를 파악하고 다니는 것은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흐름을 알게 된다면 ‘나의 업무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스스로 파악하고 조율하는 힘이 생긴다. 만약 업무의 늪에 빠져 있다면 차근차근 업무를 나열하고 우선순위를 매겨보자. 그리고 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조율하는 방향을 모색해 본다. 뭐든 발생하고 수습하는 것보다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