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인을 아시나요?
이 여인을 아시나요?
아버지는 고종황제이다. 오빠는 순종, 영친왕, 의친왕이다. 13세에 일본으로 끌려가서 일본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19세에 쓰시마의 백작과 결혼하였다. 20세에 딸을 출산했다. 출산 전후에 조발성 치매(조현병) 증세가 악화되어 34세 이후 도립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딸은 와세다 대학 영문과 동문과 결혼하였으나 1년 후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가출하였다. 이때 이 여인의 나이는 44였다.
일본에서 지내던 중 18세에 친어머니 귀인 양 씨가 사망하여 왕복 4일이나 걸리는 긴 여정으로 잠시 귀국하였으나 어머니의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상복도 입지 못하였으며, 장례 절차만 치르고 이틀 후, 또 강제로 왔던 길을 되짚어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 여인의 조현병은 이때쯤 발병하였다고 한다.
50세가 되던 1962년, 김포공항에 이 여인이 입국하였을 때, 초점 없는 눈의 이 여인을 향하여 마중 나온 유모 등이 “애기씨”라고 외치며 공항 바닥에서 큰절을 올렸다.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76세에 낙선재에서 사망하였다.
책으로도 영화로도 소개된 바가 있고, 여러 방송사에서 제작된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고종이 60세에 낳은 딸 덕혜옹주의 이야기이다.
고종이 살아있었을 때,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 예쁜 딸이 일본인과 결혼하게 될 것을 염려한 아버지 고종은 비밀리에 덕혜의 약혼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부마의 상대는 한 관료의 조카 김장한이라는 소년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비밀이 탄로 나서 이 일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본 동경의 한 정신병원에서 15년가량 지내던 덕혜를 한국으로 오게 해 준 사람은 바로 이 김장한의 친형 김을한 기자였다. 김을한 씨는 동아일보 동경 특파원으로 지내면서 덕혜의 오빠인 영친왕을 찾아가서 덕혜가 있는 병원을 알아내었고 정신병원 독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아니 죽어가는 그녀를 찾아내었다. 독립된 나라의 대통령 이승만은 그녀의 환국을 거절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그녀의 한국 국적 취득과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13세의 어린 소녀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덕혜는 50세 초로의 할머니가 되어 38년 만에 김포공항을 통해 환국하였다.
망해가는 나라의 왕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태산보다 더 큰 불행 앞에서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고종이 독살되는 것을 지켜보았고, 왕실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서 일본인과 정략결혼당하고, 끝내 정신줄을 놓아버린 이 여인.
그녀는 자기 딸의 자살 소식은 알고 있었을까? 몇십 년 만에 딸 마사에의 시신이 일본의 어느 산어귀에서 수첩과 함께 발견된 것은 알았을까? 간병인을 둘 처지가 안 된다고 덕헤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일방적으로 이혼까지 한 남편 소 다케유키가 덕혜의 낙선재 거처로 찾아왔던 사실은 알았을까?
긴 겨울이 있었기에 더욱 화사한 봄꽃과 초여름의 신록, 그리고 찬란히 빛나는 햇살과 공기가 이 여인에게 무슨 감흥을 줄 수 있었을까? 딸 마사에에게 ‘덕수궁의 벚꽃은 일본의 벚꽃보다 더 엷은 분홍빛’이라고 말해 주었다는데, 창덕궁에서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비경이 꿈속에서나마 덕수궁의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었을까?
덕수궁과 창덕궁에 활짝 피었다가 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봄이다.
2025. 04. 23.
참고자료와 사진 출처
1.『덕혜옹주』(권비영 지음, 다산책방, 2015)
2. KBS 한국사 『傳』-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2007. 0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