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영원한 이별
2012년 6월. 결혼식을 올렸고, 11월. 아빠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했다. 나는 내 인생에 폭풍이 찾아왔던 그 해를, 그리고 11월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는, 꺼내면 그동안에 뭉쳐져 풀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진 슬픔과 미안함. 자책감. 감사함. 아쉬움등이 한꺼번에 몰려올 것 같아서, 내가 그 많은 감정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그 이별이 그 해에 있었다.
아빠는 막내인 나를 예뻐하셨다. 나를 바라보는 그 미소에서 느낄 수 있었다. IMF를 시작으로 퇴직과 취업을 반복하던 아빠는 힘든 인생을 살고 계셨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현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역시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랐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게 술과 친해지신 아빠는 어느샌가 술에 취해 잠들어계신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 결혼한 나의 신혼집에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다. 아빠 손에는 나의 어릴 적 앨범이 들려있었다. 이별을 느끼고 계셨던 것일까? 그렇게 불쑥 찾아온 아빠에게 아직도 점심을 안 드셨냐 잔소리하며 점심을 차려드렸다. 그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대접이 될지 몰랐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시고는 며칠 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 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터져 나온 울음 속에 왜? 왜? 왜냐는 질문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효도라는 단어를 꺼내보기도 전에 이별을 했다. 요리도 할 줄 몰라서 맛있는 요리도 제대로 못 해 드렸다. 먹고살기 바쁘다며 두둑한 용돈도 한 번도 못 드렸다. 살가운 애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에 내가 너무 미안해서. 마음에 묻고 지금까지 살았다.
그런데 나는 아빠라는 단어의 그 느낌이 아직도 좋다. 다시 만난다면 아빠는 날 보고 그 미소를 또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다 퇴근한 아빠를 향해 달려갔던 기억. 아빠가 나와 언니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던 기억. 두 발 자전거 타던 나를 잡아줬던 기억. 여름휴가 때 바다에서 모래성을 쌓았던 기억. 게임에서 지면 삐졌던 나를 달래주었던 기억. 시험날 아침 문제를 설명해 주던 기억. 그 느낌이 아직도 따뜻하고, 좋다.
그래서 또 고맙다. 아빠의 아빠는 일찍 돌아가셔서 어떤 아빠가 좋은 아빠인 줄 몰랐을 텐데,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우리 아빠 참 잘했다.
나의 첫 번째 이별. 그게 당신이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게 별이 됐네요. 10년이 넘어가는데도 너무 그리워서 하늘을 가끔 바라봅니다. 또 미소 짓고 있을 당신과 만날 날을 기약해 봅니다. 보고 싶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