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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Nov 15. 2023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 그날.

힘들면 언제든지 들어오렴.

탈칵,

문이 열렸다. 아이들과 나는 현관 옆 기둥 뒤에 숨어있었다.


두근두근.. 두근.. 막내의 쿵쾅거리는 가슴이 뒤에서 안고 있는 내 손에 선명하게 느껴진다.


“짠! 할머니~할아버지~! “


이제 막 브리즈번에 도착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아이들이 달려가 안겼다. 딱 1년 만인가 보다.


“아이고~우리 강아지들이 이렇게 컸어?! 어미 너도 고생 많았다~“ 어머님, 아버님이 안아주셨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하실 텐데 밝게 웃으셨다. 혹여나 울컥할까 싶어 말을 이었다.


“비행시간이 많이 길었죠? 안 힘드셨어요?”


2022년, 4년 만에 한국을 다녀온 후 ‘여행’은 우리 계획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 저런 일이 쌓이면서 부모님 마음이 적적하셨는지 호주에서 보자고 하셨다.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시드니 그리고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일정. 혹여나 스케줄이 너무 빠듯한 것은 아닌지, 부모님께서 힘드시지는 않으실는지, 몇 번의 조정을 통해 계획을 하고 드디어 만났다.


브리즈번에서 야경을 보며 맥주 한잔, 달콤한 망고 하나를 입에 넣고,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이야.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이 와닿는다.


그때의 호주는 뉴질랜드보다 날이 따뜻하고, 햇살이 좋았다. 이 소중한 시간들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를 들어 추억을 담았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


호주에 있던 남편 친구와 약속이 잡혔다. 남편은 나와 같이 나가자고 했고, 부모님께서도 다녀오라고 하셨다. 한국에서 지냈다면 가끔 애들도 봐주고 둘이 시간도 보냈을 텐데, 그런 시간 한번 못 가져보지 않았느냐며 나가서 놀다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외출 준비를 하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뭔가 불편했다. ‘나는 가지 말까...?’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저 멀리 우버택시가 우리 호텔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택시가 우리 앞에 멈춰 섰고, 남편에게 말했다.


"자, 여기 호텔 키, 늦으면 열고 들어와. 난 그냥 여기 있을게." 영문도 모르는 남편을 일단 택시에 태워 보냈다.


그 친구는 나중에라도 만날 수 있지만, 부모님이랑 헤어지면 또 한동안 못 뵐 수도 있으니까 난 부모님이랑 있을게. 친구와 좋은 시간 보내고 와.
- 메시지 전송.


날씨가 흐려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님이 물을 사기 위해 가셨던 편의점으로 따라 뛰어갔지만 길이 엇갈려 아버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니 부모님이 놀라셨다.

“너 안 갔어? 왜 안 갔어?”

“그냥, 아버님 어머님이랑 같이 저녁 먹으려고요.”

“우리 걱정돼서 안 간 거야? 그러지 마. 우리 잘 있는데 뭘,“

“걱정이라기보다는, 호주 마지막 밤이고,,, 뭐,,, 그냥,,“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솔직히 표현하면 우리의 저녁 분위기가 밖에 내리는 비처럼 우울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시부모님 앞에서 내 마음을 잘 표현 못하는 것 같다. (아니, 그 누구에게라도 그렇지만.) 그래서 결혼했을 때, 이민 올 때 몇 번의 편지를 적어 나의 진심을 표현했다.

그날 나의 마음을 어떻게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날 저녁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비록 저녁 메뉴는 잘못 골라온 베지테리안 스팸, 한국마트에서 산 막국수 라면, 김치 작은 사이즈, 김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짧은 일상을 보낸 뒤, 부모님이 떠나시는 날. 우리 모두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날의 하늘은 무척 맑았는데, 신기하게도 난 그 하늘을 보며 프로메테우스가 떠올랐다. 반복되는 이별의 고통을 독수리에게 간을 매일 쪼아 먹히는 고통과 동일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출국장 앞에 섰고, 마지막으로 어머님께서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힘들면 언제든지 들어와. 그래도 돼. 응?”

“네….. 그…럴께요.. 조심히 가세요.. “


부모님이 출국장으로 들어가시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커다란 창가옆에 서서 눈물을 연신 닦아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꿈을 꾼 듯 추억을 디딤돌 삼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의 호주 여행 사진을 한 권의 앨범으로 담아 부모님 댁으로 배송했다.


“어미야, 이런 사진이 있었니? 이거 핸드폰으로 좀 보내줄래? 너무 자연스럽고, 예쁘게 잘 나왔다.”


바로 연이어 도착한 사진은 거대한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찍은 사진도 아닌, 골드 코스트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예쁜 표정을 지은 사진도 아니었다.


바로 그날,

조촐한 저녁상, 내복 입고 까불던 아이들, 그 모습을 바라보시며 흐뭇하게 웃으시던 부모님, 그리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찍고 내려놨던 바로 그날.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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