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만남과 이별. 2. 이별 편
한국에 있는 동안 잘 먹고, 잘 지냈다.
우리는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 각지를 여행 다녔다. 아이들은 경주에서 책에서만 보던 불국사와 석굴암을 봤고, 캐리비안 베이와 잡 월드를 경험했다. 매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서 행복했다.
한국에 온 김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건강검진도 받았다. 물론, 빨간 불이 켜졌지만 말이다. 가슴에 혹이 발견된 조직검사를 했다. 덕분에 출국 날짜가 약간 미뤄졌다. 엄마 집에, 어머님 집에 엉덩이를 더 비빌 수 있었다.
그런데 4년 만에 봬서 그런 걸까, 올 해는 이상하게도 ‘우리 부모님들이 연세가 많이 드셨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영상통화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주름이 보였고, 체력에서도 느껴졌다. 가슴이 아렸고, 코 끝이 찡했지만 속으로 삼켰다.
어느샌가 출국날이 다가왔다. 공항에서는 너무 이별이 힘드니까, 너무 머니까, 차가 막히는 시간이니까, 갖가지 핑계를 대며 이번에는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이제는 몇 번 해봤으니 울지 말아야지.' 속으로 몇 번을 되뇌면서 마음을 단단히 고정했다.
시댁에서 짐을 챙겨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배웅을 해주셨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점점 대화는 줄어들고, 정적과 어색한 미소만이 감돌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손주들. 혹여나 헤어짐의 시간이 또 길어지지는 않을는지 안아주시고, 업어주시고, 손을 꼭 잡아 주셨다.
그날은 무심하게도 날이 참 좋았다. 가로수 사이로 바람이 선선히 불어왔다. 여름의 햇빛이 반짝였고, 눈이 부셨다.
그래, 분명 눈이 부셔서 눈물이 고였던 거야.
곧 버스가 보였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조심히 가라고 인사를 하시면서 안아주셨다. 어머님의 마스크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서로의 마음.
버스에 올라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쓰고 있던 마스크가 서서히 젖어들었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친정 식구들이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 조카 3형제와 같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웃으며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오면 우리는 편하게 지내다 가지만, 떠난 후 그 자리가 눈에 밟혀 우리를 많이 그리워하시는 엄마와 어머님. 매번 이별이라는 아픔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다는 생각이 또 한 번 스쳐 지나갔다.
출국 시간. 마지막으로 가족들 한 번씩 꼭 안아주고, 인사는… 역시나 잘 못했다. 감정의 적정선을 넘으면 주저앉아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친정 식구들에게 유난히 낮은 적정선. 잘 지내라는 일반적인 말만 겨우 내뱉고 서두르듯 출국장에 들어섰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십, 수만 개의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오랜만인 만큼 다른 때 보다 힘든 이별이었다.
곧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