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지금이라도 가지 말까?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걸까?
출국하기 한 달 전,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나는 해보지 않은 ‘이민’이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지냈다. 내가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 둘을 책임진다는 것. 기쁨과 슬픔의 삶을 함께 나눌 가족이 전혀 없다는 것. 많은 것들이 나를 두렵게 했다.
하지만 고민은 고민일 뿐, 이미 모든 일은 결정되어 있었다. 이삿짐은 미리 뉴질랜드로 보냈고, 한동안은 못 볼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친구들과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만나야 했고, 놀다 지쳐 잠든 아이들을 안고 추억할 만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 몇몇도 연락이 닿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첫째의 어린이집을 바꿔야 했는데 고작 몇 개월이었지만 그곳 엄마들과 친해졌고, 그들은 나를 따뜻하게 배웅해 주었다. 소정의 선물로 받은 선물들이 아직도 집에 있는데 보고, 사용할 때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떠나기 며칠 전은 아버님 생신이었다. 몇 개월이었지만 아이 둘 데리고 북적거렸던 시댁에서의 좋은 추억들을 담아 앨범 선물을 드렸다. 그동안 아버님. 어머님께서 아이들 안아주신 모습, 둘째가 뒤집기 하던 모습, 첫 머리카락 잘라주던 일, 같이 산책 다녔던 탄천 길, 양평 집, 수영장 등 추억을 곱게 담아 전해드렸다. 그리고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웃고 떠드는 좋은 자리에서도 눈물 꾹꾹 담아 누르느라 부엌에서 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별을 준비한 시간이 흘러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날.
공항에는 시부모님, 언니와 세명의 조카들, 엄마와 나, 그리고 내 손을 잡은 3살 아이와 아기띠에 매달린 6개월의 아기까지 10명이 모였다. 나의 마음은 아무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고, 사진도 웃으며 찍었다.
곧 출국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하는 시간.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진다. 무엇보다 슬픈 이유는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 덜 슬플까…?
‘금방 다시 올게요.’…? 정말 금방 올 수 있을까?
‘안녕히 계세요.’…? 너무 남처럼 멀게 느껴졌다.
‘또 만나요’..?
‘놀러 오세요’…??
사실 떠나면서 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가뜩이나 눈물 많은 내가 오열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을. 이미 일주일 전부터 마음이 아팠고, 이틀 전부터 눈물을 훔쳤던 나인데.
마지막으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조카들 얼굴 눈에 꾹꾹 세겨두고, 결혼 전까지 평생 붙어살았던 언니와 한번 안아보고, 시부모님 앞에서는 아이들 데리고 떠나는 죄송한 마음에 한없이 작아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딸 옆에 친정엄마가 같이 계셔주셨다.
어금니를 깨물고, 천장 한번 바라보고, 서로 눈 마주치면 참았던 눈물이 터질까 괜한 곳만 응시해도 가족들과의 이별은 어찌할 수 없는 일. 결국은 눈 가득 차올라 넘쳐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주르륵주르륵 흘리며 헤어졌다.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마지막 인사는
건강히 잘 지내세요.
였던 것 같다. 그리고 10시간 비행 후, 8개월 동안 헤어져있던 남편을 만났다.
'Love Actually'
노래와 영상 모든 것이 좋아 즐겨봤던 영화. 그 영화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공항에서 헤어졌다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 나도 가족들을 다시 만난다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아직은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 '만남'.
그렇게 나는 가족들과의 기약 없는 이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