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시소 타기
2019년 9월,
언니네 식구와 하와이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하거니와 뉴질랜드와 한국이 아닌, 또 다른 낯선 장소에서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하와이에 먼저 도착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즈케이크집에 들어가 식사를 마치고, 호텔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로비에서 언니 가족을 기다렸다. 첫째. 둘째. 셋째. 조카 3명의 얼굴이 보이자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띠었고, 너무 보고 싶었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8살, 6살, 5살, 3살, 2살의 독수리 5형제를 데리고 우리의 여행은 시작됐다. 와이키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쇼핑을 했다. 미식가가 된 마냥 맛집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맛을 보았고, 평소 즐기지 않던 간식도 다양하게 먹어봤다. 저녁이 되자 시차를 못 이긴 아이들이 하나둘씩 잠이 들었고, 우리는 잠든 아이들을 차례로 유모차에 태운채 즐거운 시간을 이어갔다. 또 다음날은 호텔 수영장에서 놀고, 바닷가에 가서 놀고, 트램도 타고, 불꽃놀이도 즐겼다.
그렇게 꿈같던 시간이 조금씩 흘러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저녁. 해변의 멋진 석양 앞에서 우리의 추억을 기념하며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조카 한 명이 화장실에 가야 해서 흩어졌다 다시 모였는데, 막내 조카가 보이지 않았다.
"준이 어디 갔지?"
"당신 따라서 화장실가지 않았어?"
"당신이랑 여기 있는 줄 알았는데..?"
"..............???!!!!!"
이럴 때 쓰는 말이 혼비백산인 걸까. 어른 넷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유명한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가. 호텔들이 즐비해 관광객이 많은 그 해변가. 그날은 하필 주말이었고, 석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저녁 시간대라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앞이 캄캄했다. '영어도 모르는 고작 3살 아이를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어떻게 찾지?‘
석양의 아름다움은 그새 까맣게 잊고 주변을 살피고, 이름을 불렀다.
한참을 달리던 중 걸려온 전화. 다행히 언니가 찾았다고 했다.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가다 보니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알았고 해변가에서 울고 있던 막내 조카. 아이 혼자 울고 있자 백인의 노부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나 보다. 너희 엄마 어디 있냐고... 그 노부부는 아무 말도 못 한채 울고 있는 조카를 번쩍 들어 안아주었고, 높이가 높아진 조카에게 엄마를 찾아보라고 했단다. 지금 생각해도 그 노부부는 참 친절했고, 감사하다.
놀란 아시안 엄마와 울고 있는 아시안 아이. 해변의 외국인들 시선에서는 한눈에도 가족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눈치챈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켰고, 이로써 둘은 만났다고 한다. 정말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을 눈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짐을 잘 챙겨 각자의 비행기에 오르며 이별을 했다.
이상하게도 각자 떠나야 하는 제3국에서의 이별은 생각보다 슬픔이 덜 했다. 놀이터에서 놀다 저녁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쉬는 것처럼 말이다.
이별의 끝에서 사사로운 모든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들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떠난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의 슬픔이 더 크다는 사실을.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해 본 후 나는 이별이 '시소'같다는 생각을 했다. 떠나는 사람은 위로 갈 길을 가지만, 밑에 남아있는 사람은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아쉬움과 추억을 받아서 슬픔의 잔상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다른 곳에서 각자 출발하는 이별은 똑같은 무게로 슬픔이 평행되어 중심에 머무르는 듯하다.
경제적인 문제를 당당히 무시할 수만 있다면 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매번 새로운 나라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싶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서 누굴 만날까 상상하며 미소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