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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Feb 01. 2024

잘해 먹으면 좋을 ‘만두’ 하지~

당신 말이 맞았네.


방학은 길고, 날은 덥고, 할 일은 없던 무료한 하루.


냉장고 문을 열자 내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두 번째 칸에 누워있던 다진 돼지고기와 눈이 마주쳤다.


‘다진 돼지고기로.... 뭘 하지? 만두를 만들어볼까? ’ 항상 사 먹기만 하던 만두를 인생 처음으로, 내가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만두 만드는 일은 곧 키친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레시피를 보면서 하는데도 당면은 왜인지 덜 익었고, 다진 돼지고기들은 전쟁터 곳곳에 떨어진 수류탄들 마냥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숙주와 다진 부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일단 청소는 잊고, 무상무념으로 만두 속을 넣고 있을 때였다. 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 말했다.


“만두 만드는 거야? 장모님이 좋아하시겠네. “

“우리 엄마? 왜 좋아하셔??”

“당신이 먹고 싶은 음식 직접 다 만들어 먹을 줄 아니까.”

".............??"


여기서 잠깐!

다음으로 이어질 이론적인 정답은 무엇일까?


“아~맞네~(동의). 처음에는 라면 물도 못 맞췄는데(사실 인정), 요리사가 다 됐다고 엄마가 좋아하시겠다.(반복) 얼른 쪄줄게.(배려) 같이 먹자.(제안)

라고 할 수 있겠다.


하 지 만, 나는 AI가 아닌 이상, 옳고 바른말만 할 수는 없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나의 진실된 대답은,

“그래? 나는 나중에 우리 딸이 만두 만들어먹는다고 하면 ‘만두는 나가서 사 먹고 그 시간에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할 것 같은데.?”

였다.


"..................? “


이번엔 남편의 머릿속에서 번역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상상하지도 못한 답변에 당황했을는지도 모른다. 반쯤은 머쓱하고, 반쯤은 뾰로통해진 그는 “잘해 먹으면 좋지, 뭘.”이라고 말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그렇게 말 한 이유는 만두를 직접 만들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렵지는 않지만 양념한 고기, 당면, 숙주, 부추, 두부 등 다양한 만두의 속을 준비하느라 번거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만두를 사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다음에는 꼭 사 먹을 거야.’ 하고 생각할 때 남편이 말을 건 것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


완성된 만두를 팔팔 끓는 물에 한번 찌고, 기름에 구워 먹어보니 꽉 찬 속에 건강한 맛이라 흠칫 놀랐다. 사 먹는 만두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오, 이 나라에서 만두 장사 한 번 해봐?'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앞으로도 시간 날 때 미리 만들어놓고 꺼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말이 맞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알아서 잘해 먹는 딸이 대견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많아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어린 막내딸일 텐데, 잘 챙겨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하실 것 같다. 먼 훗날에는 엄마가 된 나의 딸도 함께 만두를 만들어먹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좋은 기억 하나를 추가할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면서 빚은 만두는 반은 배 속으로, 반은 냉동실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번역 결과: "아~맞네~. 처음에는 라면 물도 못 맞췄는데, 요리사가 다 됐다고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얼른 쪄줄게. 같이 먹자.”


만두 속은 남고, 키친은 난장판이었던 만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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