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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Jan 26. 2024

나 지금, 설마 사마귀를 질투하는 거니?

사마귀 키우는 남자

우리 집 사마귀를 소개할게.

이름은 '에밀리'야. 우리와 함께 산지 4개월 정도 됐어.
친구네가 키워보라며 준 사마귀 '잭'은 도저히 키우기 어려워 마당에 놔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아주 작은 새끼 사마귀를 발견하고는 데려와 키우는 중이야.


초파리만 겨우 먹던 에밀리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허물을 한 번 벗고, 이제 파리와 작은 거미, 나방 등을 잡아먹지.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에밀리는 사실 막내아들의 권유로 키우게 됐다. 살아있는 곤충만 잡아먹는 사마귀의 특성상 키우기 어려워 ‘잭’을 마당에 풀어줬는데 아이들의 오열이 시작됐다. 마당에 나가면 새나 도마뱀 같은 동물들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나 보다. 안전한 집에서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자연이 더 안전하다고 설득해 봤지만 소용이 없는 듯했다.


에밀리를 데려온 후, 얼마못가 아들의 사마귀 관심은 끝이 났다. 또 속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아니, 남편이 사마귀 먹이를 잡아주며 키우게 됐다.


처음에는 번거롭고, 귀찮다고 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에 빈 페트병을 이용해 초파리 덫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파리를 살아있는 채로 손으로 잡아 주었다. 심지어 직장 동료들까지도 '에밀리'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다. 


또 어느 날은 퇴근한 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먹이를 찾으러 나가 한참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아빠 어디 계셔?'

'에밀리 밥 준다고 나가셨어요.'


‘응……?? 굉장한 정성인데?’ 스치듯 생각하고 지나갔다.


며칠 전 친구네 초대를 받아 놀러 간 집에서 남편이 ‘에밀리’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번거로울 텐데 이제 가든에 놓아주는 게 어떻냐는 친구의 말에 남편은 사마귀와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  정??? 정이라고???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었나?'


번역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부부로 살면서 동물을 한 번도 키워본 적은 없으나 사마귀 한 마리에 이 정도 정을??


원래 살갑고, 표현 잘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세상 무뚝뚝하고 표현 안 해서 내가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우리 가족에게 받는 살가운 사랑이 부족한 걸까?’

‘원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난 지금도 여전히 ’ 에밀리‘에게 큰 관심이 없다. 먹이가 없으면 아이들에게 먹이 잡으라고 말을 하지, 내가 곤충을 잘 잡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에밀리에게 정성스럽게 먹이를 잡아주는 남편이 좀 유별나보이기도 한다.


오늘도 에밀리는 든든하게 저녁을 먹었고, 남편은 곧 에밀리 집도 큰 집으로 바꿔줘야겠다고 말했다. 


’ 에밀리는 좋겠다. 좋은 주인 만났네. 잠깐, 나 지금 설마… 사마귀를 질투하는 거야?'


"에밀리는 이제 그만 놔두고, 저녁 먹어요. 그리고 우리도 큰 집으로 이사 가야 하거든?"

에잇, 오늘은 짜증이 올라와서 번역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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