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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Jan 08. 2024

20년을 알고 지냈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공유한 부부의 피자 취향

<20살>

“얘는... 뭐지?”

우리는 서로의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울리는 친구들도 달랐고, 패션도 달랐고, 모든 것이 달랐다. 서로가 그냥 아는 사이였다.


<25살>

5년 알고 지낸 남사친이 군대를 가서 편지를 썼다. ‘힘들다고 탈영하지 말고, 잘 지내야 돼.‘

군대를 마친 그가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무사히 유학을 마쳤군. 생각보다 기특한데?‘


나는 직장인으로, 그는 취준생으로, 가끔 퇴근 후 만나 인생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7살>

7년을 알고 지낸 남사친이 뜬금없이 고백을 했다.

‘이런, 외로움의 오해가 시작됐군.‘

그 당시 여자 친구가 없던 그가 남자 친구가 없던 나에게 고백을 하길래 외로움이 만들어낸 오해일 거라고 설명을 했다.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연인이 됐다. 주변 친구들이 다 놀랐다. “너희가 사귄다고?”


<29.5살>

유학과 취업 등 여러 장애물을 넘으며 이별의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서른 코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40살>

친근한 대화 없는 찐 부부의 모습으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 아빠로 살고 있다.


여기까지가 간단한 우리 부부의 역사다. 한마디로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됐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우리는 손님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갔다. 마트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루틴처럼 핫도그와 피자를 주문하고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남편: 피자를 두 조각이나 시켰네. 왜 둘 다 같은 피자로 시켰어? 다른 것도 맛보게 다른 걸로 시키지.

나: 아~내가 페퍼로니 피자 좋아해서 두 개 시켰어. 다음에는 다른 맛 먹어보자.

남편: 당신, 페퍼로니 피자 좋아해???!

페퍼로니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네.

나:…………???…………….


나는 웬만한 모든 음식을 다 잘 먹는다. 못 먹는 음식도 없고, 알레르기도 없다. 그래서 메뉴를 정할 때도 굳이 강조하는 음식이 없다. 피자를 먹을 때도 무슨 맛이든 다 잘 먹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피자는 페퍼로니 피자이다.


20년을 알고 지냈는데, 1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몰랐다고? 처음 알았다고? 혹시, 마음의 소리였는데 실수로 크게 말한 것일까? 남편 번역기가 켜졌다.


피자를 먹는 동안 번역기를 돌린 결과, 그냥 진짜 몰랐던 것으로 번역됐다.


이런, 진짜 몰랐다니

거짓말 탐지기가 울려야 하는데 울리지 않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아쉬움, 마피아라고 확신했는데 아닐 때 느껴지는 살짝의 배신감. 뭐 그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피자종류를 몰랐다면, 내 생각보다 나에 대해 더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닐까? 갑자기 나의 남편인 그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이유는, 나도 다 잘 먹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피자가 무엇인지 몰라 물어봤기 때문이다. ‘부부’지만 우리도... 참...


나: 그럼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피자는 뭔데?

남편: 슈퍼슈프림

나: 아~그래? 몰랐네...

(손 내밀며) 처음 뵙겠습니다.


번역결과
페퍼로니 피자 한 판, 슈퍼슈프림 피자 한판 사가서 아이들과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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