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남편말 번역가
[20살]
우리는 서로의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울리는 친구도 달랐고, 패션도 달랐고, 모든 게 달랐다. 일주일에 한 번쯤 마주치는 그냥 아는 친구일 뿐이었다.
[25살]
5년 알고 지낸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이 군대를 갔다. 믿음직스럽지 않은 마음에 위문편지를 보냈다.
“힘들다고 탈영하지 말고 잘 지내야 돼.”
그는 무사히 군 생활을 마쳤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생각보다 기특한데?”
나는 직장인, 그는 취준생. 퇴근 후 가끔 만나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정도의 사이였다.
[27살]
7년 알고 지낸 남사친이 갑자기 고백을 했다.
'이런, 외로움의 오해가 시작됐군.' 생각했다.
외로워서 한 말일 거라 생각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한 달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연인이 됐다. 주변 친구들이 다 놀랐다. “너희가 사귄다고?”
[29살]
유학, 취업, 이별 위기를 넘어 결국 서른을 앞두고 결혼식을 올렸다.
[40살]
지금은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 아빠로 살고 있다. 친근한 대화보다는 실속 챙기는 찐 부부의 모습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우리는 손님 준비를 위해 마트에 갔다. 한 바퀴 돌고 난 뒤, 늘 하던 대로 핫도그와 피자를 주문했다. 막 먹으려던 참, 남편이 말했다.
“피자를 두 조각이나 시켰네. 왜 같은 걸로만 시켰어? 다른 것도 맛보게 다르게 시키지.”
“아~ 내가 페퍼로니 좋아해서 두 개 시켰어. 다음에 다른 거 먹어보자.”
“응? 당신, 페퍼로니 좋아해??? 처음 알았네.”
“.............???”
나는 웬만한 음식은 다 잘 먹는다.
특별히 못 먹는 것도 없고, 알레르기도 없다. 그래서 늘 메뉴 선택은 대충 넘어가는 편이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피자를 꼽자면 당연히 페퍼로니다.
‘20년을 알고, 1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그걸 몰랐다고?’
피자를 입 안에 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남편말 번역기를 켜봤다. 그냥 진짜 몰랐던 것으로 판명 났다.
뭔가 거짓말 탐지기가 안 울릴 때 느껴지는 미묘한 배신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피자종류를 몰랐다면, 내 생각보다 나에 대해 더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은 아닐까? 갑자기 나의 남편인 그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도 곧 웃어넘길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피자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은 뭐가 제일 좋아?” 내가 물었다.
“슈퍼슈프림.”
“아~ 그래? 몰랐네… (손 내밀며) 처음 뵙겠습니다.”
서로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새로 알게 되는 게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아마도 그게 오래 살아가는 부부의 재미이자 숙제일지도 모른다.
번역결과
페퍼로니 피자 한 판, 슈퍼슈프림 피자 한판 사가서 아이들과 같이 먹자